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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증거도 없는 雨中 계곡 트레킹

 

방태산 등산을 하고 물놀이도 한다는 정도만으로도 내키지 않았다. 동갑내기들은 아무래도 물장난을 할 것이고 물가에 가도 물 튀기는 거 싫어하는 내가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에게 인상쓰면서 못하게 말릴 수도 없을테니. 그래서 내키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혜숙이는 나혼자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니까 기회 있을 때 가보자고, 그다지 짓궂게 장난치지는 않을 거라면서 가자고 해서 일단 가기로 하고 회비 송금을 했다.

 

비는 전전날부터 계속 오락가락하고 잠자는 밤에 퍼붓기도 해서 못갈지도 모른다고 은근 기대했는데 비가 오면 다리밑에서 놀더라도 간다는 말에 배낭을 챙겼다. 비맞아도, 물에 빠져도 젖지 않도록 김장용 비닐봉투를 배낭 안에 넣고 그 안에 갈아입을 옷, 수건, 소지품을 넣고 새로 사서 한 번도 신지 않은 등산화를 계곡 흙탕물에 담그고 싶지 않아서 트레킹화를 신고 아침 6시 집에서 출발. 혜숙이를 만나 신사역에 도착하니 약속시간 7시를 조금 넘겼다. 45인승 전세버스에 인원은 23명 뿐이라 널널하게 앉아 갈 수 있었다.

 

11시가 다 되어서 목적지에 도착을 했고 방태산 계곡은 핸드폰이 터지지 않으니까 핸드폰과 갈아입을 옷 등, 필요없는 물품은 차에 두고 가라 해서 바람막이 점퍼와 먹을 것만 메고 11시가 좀 넘어서 출발했다.

 

출발하고 바로 계곡으로 들어서더니 조금 올라가서는 큰 내를 건넌다. 손에 손을 잡으라고 해서 잡고 건너려니 앞장을 선 회장이 내의 중간에 서서 움직이지를 않는다. 간격을 좁히라면서. 알고 보니 단체사진을 찍으려던 거였다. 찍고 건넌게 아니라 다시 원위치. -.- 인원이 많아서 다 찍히지도 않았을 단체사진 찍으라고 다리가 시려워서 죽는 줄 알았다. 이건 뭐, 시려운게 아니라 아팠다. -.-

 

한동안 올라가서 다시 그 내를 건넌다고 한다. 내 폭이 이 삼십미터는 족히 되는 너른 내였는데 그곳이 건너기에 적당한 곳인지 로프도 매어져 있었다. 그 로프를 잡고 건너라는 건데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고 물살이 세고 깊은 곳은 남자들 가슴까지 깊었다. 사진찍을 때 한 번 당해봤던 터라 혜숙이와 나는 뒤로 빠져서 나중에 건너기로 하고 건너는 모습을 보니 중간 중간에 남자친구들이 물가운데 서서 줄을 잡고 지나가는 여친들을 도와주는데도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이제 와서 안간다고 할 수도 없고 간다고 할 수도 없고 튀어보이는 것도 싫고. 남들 다 했으니 나도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출발을 했다. 중간까지는 그런대로 잘 갔는데 갑자기 물이 깊어지고 물살이 세져서 몸이 물에 휩쓸렸다. 한 손은 로프에서 떨어지고 한쪽 손만 로프를 잡고 있는 상테인데 물살은 세고.. 주변에 남친들이 두 서너명이 있어서 나를 밀어주고 로프 잡은 한 손을 옆으로 이동하면서 겨우겨우 반대쪽 땅으로 왔다. 물에 빠질까봐, 떠내려갈까봐, 물먹을까봐 어찌나 겁이 났는지 나중에 들으니 한 남친의 팔을 꽉 잡고 놓지를 않는 바람에 그 친구 팔에 피멍이 들었다고 한다. 머, 죽기살기로 꼭 잡았을테니 오죽했을까. 피멍이 아주 진하게 들었을 것이다. 집에 가서 와이프한테 혼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그 난리를 치고 내를 건너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는데 마음이 즐겁지가 않다. 내려가려면 또 다시 그 내를 건너야 할 것이 아닌가. 같이 산행하는 남친들에게 돌아갈 때는 다른 길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 길로 다시 간다고. 다른 길은 없느냐고 보는 친구마다 물어도 다른 길은 없고 온 길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아아,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건너올 때는 그래도 중간까지는 많이 깊지 않고 물살도 어지간해 내가 감내할 만해서 마지막에 고생을 했어도 어쨌거나 잘 건너왔는데 돌아갈 때는 들어서자마자 급물살, 깊은물인데 거기서 일단 정신 못차리게 되면 갈수록 건너기에 수월해지는 상황이라 해도 몸이 추스려지지 않아 더 힘들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온다. 계속 걱정을 하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원시림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나무에, 돌에 낀 이끼며 비가 와서 습한 것이 원시림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흑흑... 이런 장면은 화질 좋은 커다란 티비로 편안하고 시원한 거실에 앉아 보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는 생각만...

 

많이 올라가지는 않고 중간쯤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각자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펴고 점심을 먹었다. 남친들은 누군가가 가져온 김장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한 친구는 담아놓은 더덕주를 가지고 오고 또 한쪽에서는 라면을 끓이고. 물 가지고 오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물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앞에 내려가는 계곡물로 끓였다고 한다. -.-;; 끓인거니 괜찮다고 해서 나도 그냥 먹었다. 튀어 보이는 것도 싫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 배낭에만도 물이 두 병이나 있는 거라. 덥지 않아서 물을 먹지 않아 다들 물이 그대로였을텐데 그 생각을 못하고. 나중에 커피는 생수로 끓여 먹었다.

 

식사 후 일부는 산에 더 올라가고 일부는 남아서 먹고 놀기로 했는데 돌아갈 생각에 걱정 많은 나는 산에 더 올라갈 생각이 안들었다. 커피 마시고 재미있는 친구들의 개그짓이나 보며 앉아 있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식이라는 친구가 자리 정돈을 하자면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펼치고 앉았던 자리를 걷어서 계곡물에 헹구고 탈탈 털어서 나뭇가지에 걸쳐 놓고 이것 저것 정리를 하고 바지런을 떤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혼자서 어찌나 열심히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지. 지난번 신시도에 따라갔을 때도 문식이란 친구가 귀찮은 일을 잘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문식이란 친구가 어디가 조금 모자라거나 모임의 은따가 아닐까 혼자서 판단했는데 그런 거 같지는 않고 하여튼 특이하고 재밌는 친구인 것은 확실하다. 끊임없이 까불고 떠들고 놀고 장난치고.. 정말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인 듯.

 

산에 더 가겠다는 친구들에게 2시 반까지는 돌아오라고 했는데 40분이 지나도 오지 않고 비가 오기 시작한다. 남아 있던 열 친구 중 산에 올라간 친구들을 위해 한 친구만 남겨놓고 아홉 친구는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3시쯤 내려오기 시작했다. 비도 오고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도 같고 내를 건널 때 도와줄 남친들은 술을 많이 마셨고 내려오는 도중에 피가 많이 날 정도로 돌에 베이고 깨지기도 하고. 비가 오니 계곡물은 더 불어나고 물살은 더 세어질텐데.. 내를 건널 생각에 지레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한동안 내려와 이윽고 건너야 할 지점에 다다랐다.

 

남친 넷이 도와주기 위해 내의 중간 중간에 서고 여친들이 줄을 잡고 내를 건너는데 나는 건널 자신이 없어 뒤에서 있었다. 여친들 다 건너고 마지막으로 혜숙이가 건너고 이제 내 차례. 옆에 남친이 일러준다. 줄을 잡고 발을 바닥에서 절대로 떼지 말라고. 굳은 각오를 하고 줄을 잡았다. 그리고 들은 조언대로 발을 바닥에서 떼지 않고 옆으로 슬슬 밀면서 갔다. 주변에서 남친들이 물살을 막아주고 도와줘서 생각보다, 겁먹었던 것보다 중간까지 잘 왔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몸을 가누고 왔으니 중간 지나면서부터는 그래도 수월하다. 반대편 끝까지 거의 다 와서는 도와주던 여러 남친들에게 큰 소리로 고마워, 수고했어 를 여러번 외쳐줬다.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의 외침!!

 

 

 

(우리 건넌 모습이랑 비슷한 사진을 훔쳐옴... 필터처리, 이 사진은 맑은 날이라 물살도 수량도 덜 하다.)

 

 

이제 맘이 가벼워졌다. 주차장 전세버스 앞에 오니 기사 양반이 차 망가진다고 배낭은 차 밑 트렁크에 넣으라고 한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나와 천원짜리 샤워장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커다란 다라이와 수도꼭지 하나 뿐이다. 옷 갈아입을 방은 유리창이 반은 훤하게 보이고. ㅋㅋ 찬물에라도 일단 헹구고 옷을 갈아입으니 기분은 낫다. 무쟈게 비싼 샤워장이었다. 개운한 기분으로 나와보니 산에 더 올라간 친구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다들 샤워하고 차에 올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메뉴는 두부전골이었는데 밑반찬이며 전골이며 모두 강원도 음식인 듯. 종일 긴장하고 추웠던 몸에 따뜻한 음식이 들어가니 긴장이 풀린다. 소주도 두 세 잔 먹고 두부전골도 알아서 퍼 먹고 밥은 반 공기만 먹었다. 옆에 친구 하나가 말도 없이 잘먹는다고.. 흉인지 칭찬인지.

 

식사를 끝내고 서울을 향해 출발. 내가 앉은 창밖으로 우리가 건넜던 그 내가 주욱 이어진다. 조금 내려오다가 이정표를 보니 그 내가 내린천인가 보다. 흙탕물에 6시가 훨씬 지나 흐린날이라 어둑해지려고 하는데도 래프팅하는 사람들이 많다. 날씨가 조금만 도와줬더라면 내를 건너는 것도 그닥 어렵지 않았을 거고 물놀이하기도 좋았을 거고 산에도 좀 더 올라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날씨가 받쳐주지 않은 덕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버스 안,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이런 저런 생각에 젖는다. 혜숙이가 소개한 이 모임의 친구들이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럴까? 왜 힘들게 내를 건너주고 음식을 만들어 주고 귀찮은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해가면서 여친들이랑 같이 다닐까? 자기네끼리 가면 귀찮지도 않고 더 편할텐데. 한편으로 송천 모임과 비교해봤다. 송천 친구들도 그런 친구들이 일부 있긴 하지만 아마 이번 방태산 아침가리계곡 트레킹처럼 힘든 상황은 첨부터 만들지도 않을 것 같다. 하하. 송천 친구들은 초등 동창들이라 그저 딱 그 정도일 뿐인 것 같다. 그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는 별개로.

 

평소에는  모임도 여친들을 여자로 봐주지 않는다고는 하더만 그래도 내가 볼 때는 훨씬 더 신사적이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것 같다. 개그맨 뺨치는 친구들이 많아서 유쾌하기도 하고. 혜숙이 덕에 두번씩이나 실비만 부담하고 좋은 곳에 다녀와서 좋기는 한데 그쪽 친구들에게 빚진 느낌이다. 그 모임, 그 친구들, 나한테 베푼 호의와 선행, 다른 곳에서 복으로 받기를...

 

어제 아침보다 어제 오후가 로프에 매달려 힘줬던 팔이 더 아팠다. 오늘 아침에도 스트레칭을 좀 해줬는데 조금씩 나아지겠지. 카메라도 못가져가고 핸드폰도 못가져가서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그래서 증거도 없는 우중 방태산 아침가리 트래킹. 정말 다녀온 걸까? 아득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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