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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파주 마실

 

벌써부터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가지 못했던 율리네 다녀왔다. 또 어영부영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급진전하여 경복궁역에서 3시에 출발하기로 전날 결정되어 율리네 갔다가 파주 아울렛도 가보고 상황이 되면 일산에서 저녁번개까지 이어보자고 했는데 번개는 하지 않고 저녁먹고 돌아왔다.

 

갑자기 가기로 결정되는 바람에 무엇을 가지고 갈지 준비할 시간도 없어서 경복궁역으로 출발하면서 뚜레쥬르에서 케익을 하나 사가지고 갔는데 율리에게 좋지 않은 음식으로 판단한 율리엄마가 케익을 어른들에게만 준다.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율리를 그렇게 키우나보다 하고 먹는데 같이 식탁에 앉아 있던 율리가 갑자기 아앙~ 울어제끼는 거다. 먹고 싶은데 저는 주지 않고 어른끼리만 먹으니 서러워서 울음이 터진 것. 어찌나 미안하던지. 지금도 그 상황 생각하면 등에서 땀이 난다.

 

율리네 도착해서 율리엄마가 만들어준 카페라떼도 한잔 먹고 감자단호박슾도 한 그릇 먹었다.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위해 만든 거라 해서 먹었는데 맛이 좋았다. 보기도 좋고. 율리엄마는 음식도 예쁘게 잘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도 잘하고 율리도 안정감있게 잘 키우는 거 같다.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나이, 경험의 차이일 것도 같고 율리엄마는 충분히 엄마가 될 생각과 준비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내가 별이 키울 때는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줄 겨를이 없었다. 바쁘니까 기다려주지 못하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다 해줬는데 그게 아이에게는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열심을 다했고 정말 소중하고 귀하게, 따뜻하게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후회가 많다. 누구나 지나고 나면 아쉬운 점이 있겠지. 사람이, 엄마가 완벽할 수 없으니까..

 

율리아빠가 악의 소굴이라고 명명했다는 파주 아울렛. 우아하고 깨끗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조용한 몰을 돌아다니면서 아, 여기가 겉모습과는 달리 흉악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될 수 있는대로 우아하고, 화려하고, 깨끗하고, 휘황찬란한 것들은 멀리하고 풀을, 나무를, 산을, 그리고 언성을 높이지 않는 책을 가까이 해야지. 그래야 만족할 수 있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하고 느낄 수 있으니까. 끝도 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옭아매는 재물에 치어 살지 말고 솜털처럼 가벼운 지혜를 추구하면서 가볍게 살아가야지. 가난한 자의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지만.

 

 

2012.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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