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있었지만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성국님의 문병을 가기로 했다. 상태가 위중하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전에도 그러다가 괜찮아지곤 했었으니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문병가면서 뭐 사가지 말고 그냥 사인사색, 봉투나 하나 갖고 가자고 해서 심사숙고해서 성경말씀을 골랐다. 자신의 생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아는, 신앙을 가진 이에게 완쾌를 소망하는 성경구절이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서 시편 62편 중에서 2절을 골랐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기 바라는 마음으로.
성국님은 눈동자는 노랗고 복수도 차고 온몸은 볼 수 없을 지경으로 말라 같이 간 친구들이 놀랄, 놀라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할 정도로 병색이 깊었다. 다만 평소에 잔주름 많던 얼굴이 살이 쪼옥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팽팽해지고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해서 곧 일어나 나올 것만 같았다. 얼마전, 죽음 전날 피골이 상접한 언니의 모습을 본 경험 덕에 놀라지 않고 손을 잡아줄 수 있었다.
병실을 지키고 있는 미옥도 건강이 안좋은 편이었는데 교대조차 하지 못하고 병상을 지키느라 힘들어 보였다. 다니러 온 미옥네 언니가 연신 의자에 앉아 있는 성국님의 발을 주무르고 있었고. 30여 분 있다가 빨리 나와서 커피 사라는 희망의 말을 나누고 병실을 나왔다.
배웅한다고 따라나온 미옥은, 자기 너무 힘들다고, 힘들어서 자기가 죽을 지경이라고, 우리들이니까 편하게 얘기한다고 말한다. 시부모, 부모라면 형제가 있으니 한번씩 교대도 할 수 있겠지만 남편이다보니 교대할 사람도 없고 공익 복무중인 아들, 고3인 아들은 오히려 도와주어야 할 상황이라면서. 잠시 방심하다가 피가 터지는 걸 캐치하지 못하면 바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한다. 간병인을 쓸래도 안심을 할 수가 없어서, 그리고 환자가 싫어해서 간병인 도움도 받을 수가 없다고. 발병한지가 벌써 9년째라고 한다. 중간중간 위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다시 소생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좀 심각해서 하루에도 여러번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장례식장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병원을 나와서 내가 눈빛만 봐서는 다시 소생할 것 같다고 했더니 성은이는 죽음을 앞두고 반짝하는 거 일거라 그런다. 하긴 몸을 보면... 성국님 문병을 하고 고대병원으로 미연이 엄마 문병을 하려고 우리 셋이 얘기를 해놨는데 미연이 가지 말라고 길길이 뛰는 바람에 다음으로 미루고 근처 새마을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배는 불러도 허전한 느낌에 보드람치킨으로 치맥 하러 갔다.
질그릇 같은 인생... 요즘 내가 많이 생각했던 화두다. 사람 몸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 멀쩡했다가도 어느 한 순간에 깨져 부서져버리는 질그릇 같은 몸. 최근에 이어지는 친구들 부모님의 소천 뿐아니라 내 또래의 투병과 사망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한 잔 하면서 나온 얘기들. 갱년기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잠깐 사이에 30만원을 날려버렸다고 억울해 하는 친구의 얘기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내 주변도 나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임을 깨닫게 해준다.
동갑내기라고 각별한 마음을 갖고 있던 별이아빠랑 같이 문병을 갔어야 했는데 사인사색이 가는 바람에, 또 미연이네 엄마 병문안까지 예정했던 바람에 같이 가지 못했는데 조만한 한 번 더 가봐야겠다.
어차피 한 번 죽는 인생, 성국님의 죽음을 앞둔 마음이 평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살아도 평온하고 죽더라도 평온한 마음을...
2012. 7. 12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