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주절

상념

 

내 블로그에서는 비공개로 써놓은 글을 이장네 게시판에 올리려다가 취소하고 나왔다.

 

남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동안 생각했던 내 모습과 요즘, 혹은 앞으로 보게 될 내 모습은 같은 모습일까 다른 모습일까.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호감은 퇴색하고 가끔씩 나 때문에 마음 불편해지지는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나를 드러내면서 살아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일까?

 

인생 뒤돌아보면 최선을 다하지 않은 때도 많았고 내가 한 선택에 아쉬움을 느낄 때도 많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고 남에게 아픔이나 피해 주지 않으면서 그리고 내 선택에 크게 후회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내 수준, 내 눈높이가 그랬으므로 그것을 선택했었다는, 주변 상황이나 남 탓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이 나이에 걸맞는 신분과 경제력을 누리는 지금,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안달복달하지도 않는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도,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도 내 탓이고 내 성격이고 내 몫이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불행하지 않다. 지금까지 신과 자연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적신으로 세상에 나와 잘 살아왔고 앞으로 잘 살아갈 것이며 또한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갈 때, 적신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적어도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썩어 없어지는 것을 최상이라 추구하며 살지도 않았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자 노력했고 내 정신세계를 높은 곳에 두고자 노력했다. 내가 와 있는 수준이 신이나 자연이나 현명한 사람이 볼 때 '어딜 감히' 하고 말한다 할지라도. 이 세대가 추구하는 것을 갖추지 못했다고 나를 패배자로 본다면 그건 그렇게 보는 사람의 시각 문제일 뿐이다.

 

수십 년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구들을 내가 깊이 신뢰하는 이유는 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고 인정해 주기 때문이고 십년 안팎, 비교적 짧은 세월을 함께 한 친구들의 나를 보는 시각에 예민해지는 것은 그 친구들도 내게 좋은 친구이고 내가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친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이어 읽는 잠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가난한 자는 그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잠언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선악간의 판단이 없다. 다만 어떤 부자냐, 어떤 가난한 자냐가 선악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지금 시대에 정의로운 부자가 있을까. 정의롭게 부를 일궜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해도 사회적, 제도적으로 정의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난은 가끔씩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지만 그 짧은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는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천석꾼에게는 천가지 걱정이, 만석꾼에게는 만가지 걱정이 있지만 나는 한 두가지 걱정 뿐이니까. 가난하지만 지금도 돕는 손길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이 돕는 손길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주변의 시선에 예민해지지 말고 지금까지의 나, 앞으로도 큰 변화 없이 살아갈 내 모습에 당당하자.

 

 

 

'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새 책상  (0) 2012.09.04
신발  (0) 2012.09.03
별이아빠, 첫 출근  (0) 2012.08.28
논술샘과 점심  (0) 2012.08.27
다시 내방으로..  (0) 201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