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병문안을 갔을 때 병원에서는 준비하라 했다고 들었지만 혹시나 또 회생해서 나올지도 몰라 기대를 했었는데 결국 그 병원문을 나서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떠난 사람은 별이아빠랑 동갑이고 (그래서 별이아빠도 나도 친근하게 느끼고) 남은 사람은 나랑 학번이 같다. 그리고 그들사이에 첫아들은 별이와 동갑. 어릴 때는 같은 학교에 다녔고 우리 모두는 때때로 시간과 공간을 함께 했다.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십여년을 보아온 사이인데다가 공통점도 많다보니 마음으로는 남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남편을 떠나보내고 난 후 한번쯤 만나서 밥이라도 같이 먹고 이야기라도 들어주어야겠다 생각을 했었다. 상을 마치고 인사차 전화를 한 거지만 자기를 위로해달라고 얘기도 했었고. 그래도 혼자 만나는 것이 조금, 아주 조금 불편해서 의리있을 것 같은 후배와 연락을 해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흠... 만나서 밥은 안먹고 일, 이차에 걸쳐 술-.-을 마셨다.
진단을 받고 9년을 투병했다고 한다. 그 과정 중 처음부터 반의 세월을 나는 가까이서 직접 보면서 지내왔다. 성실한 사람이라 투병을 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 그 사람의 성격이었을 것이다. 일을 그만뒀더라도 맘이 편치 않아서 몸의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십년을 넘게 살면서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한두 번은 이혼도 생각하고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아빠로서 남편으로서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내가 옆에서 볼 때도 그랬다.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부부 사이가 편하고 행동이 자유로운 것이 내 눈에도 보였으니까.
마지막 입원에 한 달 넘기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고도 넉 달 이상을 견뎌냈다. 그 기간동안, 아무런 치료도 방법도 없이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한다. 수시로 퇴원하라는 의사와 병원의 압력이 스트레스였다고. 병원비도 많이 나오고 긴 시간 혼자서 간병하면서 지쳐 짜증이 날 때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니 이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남편과 같이 남편 사후에 대해서 얘기도 많이 했고 영정사진을 고르면서 넥타이 맨 정장차림보다는 연예인처럼 편안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을 쓰기로 결정하면서 히히덕거리기도 했단다. 병원에서 이제 48시간 넘기기 힘들다고 통보를 받고 나서는 이별의 방이라는 병실로 옮겨서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게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은 가족에게도 큰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고 하면서 앞으로 이별할 때는 꼭 그 공간을 이용하라고 강력 추천까지 한다. 온 가족이 편안하게 앉아 쉴 수 있게 꾸며져 있고 음악이 계속 흐르고 다른 소음이나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공간에서 가족끼리만의 이별 의식을 치룰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하지는 못하지만 들을 것 같은 떠나는 이의 귓가에 가족들이 한사람 한 사람씩 고마웠다, 즐거웠다, 사랑한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웃고 울고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데 그것이 떠나는 사람에게도 남겨진 사람에게도 어린 자식들에게도 위로의 시간, 치유의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아서 어떤 느낌일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든 것들이 다 혼란스럽고 두렵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남편이 있을 때랑 똑같이 지내라고 했다. 주변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평소처럼. 맛있는 거 먹는 것도, 예쁘게 옷 입는 것도, 화장하는 것도, 유쾌하게 웃는 것도 모두 전처럼 똑같이 하라고. 6시에 만나서 12시에 헤어졌으니 6시간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위로가 되었다면서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얘기도 하자고 한다.
같이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술이 좀 과했다. 술 좀 할 줄 아는 친구들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750밀리 양주를 다 마셔버렸다. 내가 언더락으로 석잔쯤 마셨으니까 둘이 마신 양이 꽤 되는거다. ㅠㅠ 내가 취하지 않았으니 그 친구들이 취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는데 (사실 여자친구들끼리 바에 가서 술을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아, 난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서 바에 가더라고 칵테일이나 한잔, 혹은 맥주를 마신다.) 집에 가기 위해 나오는데 보니 두 친구가 좀 취해 있었다. 일차는 내가 냈고 이차는 후배가 계산을 했는데 부담이 큰 것 같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을 보태주었다. -.- 생각했던 대로 만나야 할 사람 만나기를 잘 했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조금 넘친 느낌, 조금만 부족했더라면 100% 후회없는 시간이었을 것을 생각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래, 이런 때 아니면 또 언제 이래보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다보면 오버할 때도 있는 법이고 그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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