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주절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리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리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연희와 연락이 끊어진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1994년 그 덥던 여름, 한국에 나와 있을 때 만났고 미국으로 돌아가서 작은 아이를 낳았고 작은 아이까지 같이 찍은 가족사진을 크리스마스 카드로 받았으니.. 그 이후로 몇 번 통화를 했지만 곧 연락두절, 아무리 적게 잡아도 15년은 되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연락이 끊어졌고 그래서 미국에 살고 있는 친정으로 연락을 해봤는데 친정도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연락하는 방법은 연희가 내게 하는 방법뿐인데 연락하지 않는 걸 보면 수첩을 잃어버렸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010으로 넘어가지 않고 011을 사용했던 이유, 010으로 옮겨서도 전화번호 자동연결서비스를 지금까지 수년 동안 유지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연희가 어느 구석에서라도 내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연락을 했을 때 연결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단지 그 이유 뿐이었다.

 

비슷하게 연락이 두절되었던 은미를 몇 년 전에 찾았었다. 은미 전화도, 은미가 일러준 언니네와 친정전화까지 모두 번호가 바뀌어버린 걸 알고 난 후 참 슬펐다. 다른 친구와는 다르게 은미는 제쪽에서 친구들에게 연락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오는 집전화도 잘 받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친구라 내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더니 연락이 끊어졌는데 그 후로 나는 어떻게 연락이 닿을 수 없을까 생각만 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몇년 전 식당에 점심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TV에서 어느 특파원이 소식을 전하는 걸 봤는데 왠지 그 친구의 남편같다는 느낌이 파파팍!! 강하게 전해졌다. 그 친구의 남편 이름도 모르고 결혼식장에 갔으니 딱 한 번 보긴 했겠지만 워낙에 내가 얼굴맹이기도 하고 수십년 전에 본 신랑 얼굴을 기억할리 만무하건만 왠지 그 느낌이 너무나 강하고 다음날도 계속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 망신을 무릎쓰고 그 특파원에게 이메일을 보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기하게도 그 강한 느낌이 딱 맞았던 거다. 난 은미가 미국에 가 있는 것조차 몰랐는데 미국생활한지 7, 8년이 지나서야 그렇게 연락이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교수노릇하고 있는 은미는 포토맥강변의 사진과 소식을 전하면서 내게 휴가를 얻어서 꼭 저한테 오라고 한다. 같이 포토맥강변을 걸어보자고. 해외여행에 별 관심이 없었고 특히 미국은 그닥 가보고 싶은 나라가 아니었는데 단지 은미가 있다는 이유로 은미가 오라는 이유로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믿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고.

 

그리고 연희도 언젠가는 만나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나는 열심히 연희와 그 남편의 이름을 검색했었고 검색할 때마다 좌절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또 검색해보고. 다음, 네이버, 구글 등 온갖 검색엔진을 뒤져봐도 신통한 소식은 없었다. 그 남편이 아주 오래전에 대구 어딘가를 다녀갔다는 소식만 있을 뿐. 최근에 댈라스에 있는 정순이 남편을 만났을 때 연희가 얼바인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는 얘기를 했다. 다시 검색시작. 그래도 안나왔는데 얼마 전에 얼바인 지역 교회 전화번호가 있는 웹페이지를 하나 찾아냈다. 그동안 통 나오지 않았던 페이지이니 최근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곳에 전화를 해서 누가 받든지간에 혹시 내 친구부부를 아는지 물어봐야겠다 작정을 했다. 연희가 그곳에 있다해도 전화번호를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내 번호를 전해줄 수는 있을테니. 사실, 얼바인이 어딘지도 모르고 스마트폰 세계시각 검색에서 얼바인을 쳐보니 나오지도 않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바인이 어느 지역과 가까운가를 찾아서 시차를 알아놓고 전화를 하려고 보니 전화할 수 있는 시각이 아니었다.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전화를 하면 되겠구나! 결심.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즐겨찾기 해두었던 웹페이지를 열어 전화를 했다. 다행히 한국말로 전화를 받는다. 여기는 서울이라고 하면서 그곳이 교회가 맞느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대답하면서 전화받는 이가 자기의 이름을 댄다. 세상에!! 연희의 남편 이름이었다!!!

 

피차에 허둥대면서 통화를 하게 된다. 마음은 급하지, 하고 싶은 말은 많지, 전화는 국제전화라 살짝살짝 끊어지는 감이 있지. 요점은 이랬다. 연희가 지금 엄마 팔순을 맞아 한국으로 여행을 가 있으며 곧 동티모르로 떠난다는 얘기. 미국 집 전화번호, 연희 핸드폰 번호를 불러주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임대한 연희 핸드폰 번호를 알려준다. 연락해보라고. ㅠㅠ

 

연희를 찾느라 검색을 하고 생각에 몰입할 때가 가끔씩 있었다. 찾아보고 안되면 한동안 잊고 있다가 또 한참 검색해보고 또 잊고 있다가 또 검색해보고. 그럴 때는 연희 꿈을 꾸기도 했다. 꿈은 늘 아쉬운 꿈을 꾸었던 것 같다. 어떻게 연락이 되어 통화를 하려고 하는데 통화가 안되는 꿈, 또 어찌어찌 연락이 되어 전화를 했더니 한국에 나왔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인 꿈, 한국에 나왔다가 돌아가기 전날 겨우겨우 힘들게 만나는 꿈... 그런 꿈을 꾸면 꿈이지만 참 많이 아쉽고 속상했다.

 

연희 남편과 통화를 하고 가르쳐준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한참만에 받는다. 목소리가 좀 달라졌나? 생각하면서 얘기하다보니 아니다. 언니였다. 그러니까 부모님만 같이 온 게 아니고 언니도 같이 왔나보다. 전화를 바꿔줬는데 목소리가 딱 맞다. 그때 그 목소리. 연희야!!! 했더니 내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듣는다. 지은이, 지은이구나?? 머, 이러면서. 나도 놀랍지만 생각지도 못한 연희는 또 얼마나 놀랍고 반가울까. 그렇지 않아도 어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댄다. 그 친구도 연락이 끊어졌었는데 이리저리 어렵게 찾아 넉달 전쯤에 연락을 해 와서 어제 만날 수 있었다고. 그 친구에게 연락되던 중학교 친구들과 끊어져서 못찾고 있다며 글찮아도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랬는데 다음날 아침에 내가 전화를 했단 말이지?!! 하하하...

 

문제는 오늘 점심은 이모님 댁에서 친지들과 같이 하기로 약속이 있고 내일 아침 일찍 동티모르로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저녁밖에는 시간이 없는데 시간을 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 무슨 일이 있어도 내야 되는거지!! 오늘 못보면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데.. 점심먹고 그쪽에서 끝나는대로 내게 전화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나니 가끔씩 꾸던 연희 꿈, 그게 지금 상황과 너무 비슷해서 신기했다.

 

오늘 오후에는 문화특강 영화읽기를 가는 날이지만 이건 가뿐하게 빠져주고 점심먹고 나서는 계속 연희 전화만 기다리고 있을거다.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워하던 친구들을 모두 찾았다. 물론 아직도 소식이 궁금한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너무너무 간절하게 찾았던, 꼭 만나야 하는 친구는 다 찾았다. 참 감사하다. 검색에 나오지도 않는데다가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찾는다 해도 어렵게 어렵게 찾게 되겠지 했는데 이렇게 순조롭게 만나다니..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멀리 자신의 고향, 친척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그의 종을 보냈을 때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리

 

 

 

 

 

'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모닝커피  (0) 2012.11.06
반가운, 너무나 반가운...  (0) 2012.10.31
노인 고객  (0) 2012.10.19
마트에서 세상읽기  (0) 2012.10.19
최저임금제도  (0) 201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