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와 통화를 하고 난 후에 생각을 해보니 내가 새로운 웹페이지를 찾은 건 몇 주 전이었던 것 같다. 교회 전화번호니까 주말에 맞춰서 전화를 해야 누군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에 주말을 기다리다 한 번 지났고, 두번째 지나고 난 엊그제 월요일에는 주말 맞추기도 힘드니 어찌되었든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시차 때문에 화요일 아침에야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처음 희망이 보이는 웹페이지를 찾아냈을 때 바로 전화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어제 아침에 전화를 한 것도 정말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었다. 연희를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내 전화를 받은 연희 남편은 그 시간에 그곳에서 전화받을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단다. 행사가 있어서 보스톤에 갔는데 요즘 뉴스에 떠들어대는 태풍 때문에 일주일 예정인 행사가 취소되어 얼바인으로 돌아왔다는 것. 태풍으로 인한 행사 취소가 없었더라면 내 전화를 받지 못했을 거고 그럼 만날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종일 내가 전화한 시기가 기적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연희를 만나보니 더 큰 기적같은 스토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리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과 언젠가는 만나게 될거라는 믿음이 무언가를 움직이는 모양이다.
연희는 내 얼굴 못본지가 7, 8년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2005년쯤까지 본 것 같다고. 우리 나이가 어느새 1, 2년쯤 지났을까? 하면 5년 훌쩍이고 한 5년쯤 지난 일이겠지? 하면 10년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걸 아직 연희는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하하.. 정말 그렇다. 몇년 안된 일 같은데도 5년이 훌쩍 지난 일이고 5년쯤? 이렇게 생각되는 일들은 10년 그 이상. 그런 경험이 갈수록 많아진다. 이제 내 나이 갯수가 많아져서일 것이다.
연희는 1994년 그 여름에 보고 그 후로 만난 적은 없었다. 95년인지 96년쯤에 연희의 남편이 중국인지 소련쪽인지 가는 길에 잠깐 서울을 들렀을 때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한 자리에 가서 만나고 볼펜을 선물로 받아온 적이 있었고 연희 남편의 건강이 나빠져서 온가족이 캐나다로 안식년을 가고 남편이 휴식하는 동안 연희는 공부한다는 얘기를 전화로 들은 게 마지막인 것 같다고 했더니 그때가 2000년쯤일 거라 말한다. 그러니까 17,8년만에 만난거고 연락이 끊어진 것은 12,3년이 되었다는 얘기다.
앞쪽에서 타서 을지로3가역 앞쪽 개찰구를 빠져나오면 내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는데 뒤쪽 개찰구를 빠져나와 전화를 했다.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저쪽에 보이는 모습이 아!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살이 좀 찐 거 빼고는 헤어스타일도 어린시절 내내 봐왔던 단발머리!! 우리는 서로를 보고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말부터 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아슬아슬하게 기적처럼 만난 느낌보다는 얼마 전에 만나고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좀 일찍 만나면 남산을 갈까 고궁을 갈까 혼자 고민했는데 21일에 한국에 도착해서 제주도 부산 설악산을 잇는 여행을 길게 했다니 단풍구경은 싫컷 했을 터, 편하게 앉아 이야기나 나누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종일 못먹었다는 커피, 가까운 커피빈에서 한 잔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교보에 살게 있다고 해서 교보에 가서 사고 저녁먹기에 일러서 슬슬 삼청동으로 걸어갈까? 했더니 남들이 추천하는 곳인데 가보지 못했다고 가보잔다.
삼청동은 작고 예쁜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카페에 앉아 커피도 마시고 배고프면 다양한 종류 중 하나 골라 식사도 하고 그러는 코스일 것이다. 나도 쇼핑을 별로 즐기지 않지만 연희는 더하다. 사람많은 가게에 들어가면 온 몸에 힘이 빠진다고. 우리는 걸어가면서 예쁜 가게들을 밖에서 스쳐지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삼청동 수제비집에 들어가 수제비를 먹었다. 배부른 연희랑 배고픈 내가 먹고 남은 수제비가 단지에 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러 가려니 한방차를 먹고 싶다고 해서 검색해보니 한옥카페 달이라는 데가 있기에 찾아가는데 중간에 옹달샘이라는 한옥카페가 먼저 나와서 그리 들어갔다. 테이블이 입식이 아니고 좌식이었다. 방바닥도 따끈한. 연희는 생강차를 나는 모과차를 시켰는데 어울리지 않게 음악은 팝송이 나오더라는.
이번 여행은 엄마 팔순 기념으로 엄마와 명희언니, 연희 삼모녀가 나왔다고 한다. 아빠는 십여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엄마는 연세가 있으시니 생애 마지막 한국여행이라 생각하고 너무 좋아하셨다고 하고 살아계신 형제와 조카들을 다 만나고 가시는 모양이다. 엄마도 언니도 연희도 15분 거리 근방에 살고 있고 엄마는 오빠가 이혼을 해서 오빠랑 같이 오빠 아이를 키워주면서 사신다고 한다. 다들 가까이 산다니 참 다행이다.
연희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안식하러 캐나다에 갔을 때 상담쪽으로 석사를 해서 지금은 상담치료를 하는 공무원인데 6년 반을 하다보니 많이 힘들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말을 계속 들어주는 것이, 게다가 공무원이니까 형편마저 어려운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만져주는 것이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마음 튼튼한 연희가 그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한다 해도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일을 그만둘 것인지 계속할 것인지 고민 중이고 이번 여행을 하고 돌아가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버클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시절, 석사까지만 하고 박사과정을 밟지 않았던 것에 대해 연희를 아는 모든 친구들은 안타까워했다. 연희는 학창시절 학교에서 인정받는 수재였고 개인적으로 내가 좀 더 안다면 명희언니가 그런 말을 했었다. '내 동생이지만 꼼짝없이 공부할 때 보면 정말 대단한 거 같아.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 어느 분야에서든 이름 날릴 거라 기대했던 친구들에게 - 어쩌면 가족에게도 그랬겠지만 - 큰 아쉬움을 남겼었다. 지금도 연희를 아는 친구를 만나면 박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말들을 나누곤 한다.
주변 친구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연희는 선택해야 할 때 세상에서 보는 평가나 가치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목표에 따라 숙고해서 선택하고 그 길을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 싶으면 다시 공부해서 시작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사는 모습. 나는 그러지 못했는데.. 생각하면서 살짝 이 나라, 이 사회 탓으로 미뤄본다. 미국의 모든 면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친구들이 늦게 공부하고 늦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보면 그래도 기회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면이 부럽다.
별이랑 동갑내기인 #경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는 따로 있어서 아직 안정되지 않은 상태라 하고 둘째 #아는 동티모르에 있단다. 봉사활동하러 갔다와서는 동티모르로 다시 가고 싶다고 졸라대서 보냈는데 어려운 나라에서 어려운 상황을 보고 인생관을 확립한 것 같다고 한다. 내년에 대학을 가야 하는데 미국으로 돌아가 간호학을 전공하고 다시 동티모르로 봉사활동을 가겠다고 한다고. 연희의 부모님을 내가 좀 알고 연희를 알고 연희의 두 딸 얘기를 듣고보니 그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성격과 생각이 유전되는구나 싶다.
연희는 딱 내가 한참 살쪘을 때만큼 이었다. 몇 년 전에 수술을 하고 나서 회복도 더디고 몸이 전같지 않아서 약 거부하는 성격에 홍삼을 한해동안 챙겨 먹었다고 한다. 몸이 안좋아진 후부터 살이 쪘다고 하는데 살보다는 건강을 위해 운동을 조금씩 하라고 했다. 21일에 한국에 도착했다니 열흘 남짓되었는데 한국에 온 지 한달은 된 것 같다고 한다. 아마 일상을 벗어난 날들이고 자기 사는 영역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내 눈에도 그래보였다. 피곤해 보이는 느낌. 이제 동티모르에 가서 1주일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몸도 마음도 편안해질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한국에 자주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다음에 나올 때는 미리 연락을 하고 나올테니 만날 수 있는 친구들 다 연락해서 보자고. 그러면서 나보고 친구들이 함께 소식을 전하고 나눌 수 있는 인터넷 까페 같은 걸 한 번 만들어 보라고 한다. 삼년 쯤 후에 내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 번 친구들 보러 갈까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꼭 오라고 거듭 당부를 한다. 좀더 세월이 흐르면 독일 친구 미국 친구 모두 다같이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까. 세월이 흐르면 시간은 나겠지만 체력이 또 문제가 되겠지.
어릴 때는 하루 하루가 지겹도록 길고 길었는데 이제는 어찌나 빠른지... 40대가 이제 두 달 남았다. 50이 되면 속도가 또 다르게 느껴질까. 지나고 나니 살아온 날들이 잠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