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요일
혼자 간다고 했던 병원은 비가 종일 내리는 덕에 가지 못하고 내가 점심을 먹고 퇴근, 집으로 갔다. 반깁스했던 것을 다 뜯어서 거실바닥에 너절하게 어질러 놓았다. 솜까지 북북 찢어서. -.- 보기에 복숭아뼈 부분이 부었고 묶어놔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두 발의 색깔이 다르고 다친 발은 차가웠다. 택시를 타고 그래도 전문병원이 낫겠지 싶어 노원에 있는 튼#병원으로 갔다. 엄마가 쓰던 목발을 있는대로 키워서 짚고 다녔다. 엑스레이를 먼저 찍고 의사를 보러 갔더니 축구선수인가를 먼저 묻고 처음 다친거니까 그냥 3주 통깁스 하자고 한다. 여러번 다쳤다면 MRI를 찍어보고 좀 더 정밀하게 봐야겠지만 처음이니까 아마도 인대를 다친 정도일 거라고. 깁스를 하고 나서도 문제가 해결이 안될 때 그때 MRI를 찍자고 한다. 통깁스 한 걸 보니 깝깝하다.
2.
걱정
월, 수에 다니는 학원은 빠질 수가 없단다. 빠지면 진도를 맞출 수가 없고 진도를 맞출 다른 시간으로 옮길 수도 없단다. 브라질어라 흔히 배우는 언어가 아니라 그런 모양이다. 게다가 이번 일요일부터는 스페인어를 다니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서 걱정을 한다. 다음달부터 시작하라고 하니까 그것도 다음 시작하는 강좌가 두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며 계획했던 일이 어긋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학원을 빠질 수 없다면 다녀야지. 택시비를 줄테니까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또 택시비 많이 나올 것을 걱정한다. 그러게, 늘 축구할 때는 조심하라고 했잖냐. -.- 어쨌거나 일주일에 두 번 삼주니까 여섯 번 택시 타고 다니기로 하고 스페인어는 다음 개강까지 기다리기로 결정.
퇴근한 별이아빠에게 학원을 빠질 수 없다고 택시를 타고 다니게 해야겠다고 말했더니 전철을 타면 된다고 쉽게 말한다. 아이의 입장이 되어서 목발을 짚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거기서는 승강기가 있어서 탑승하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쳐도 지하철 갈아타야지, 내려야지, 학원까지 걸어야지, 그게 쉽다고 생각이 되는건지.. 엄마와 아빠의 차이.
2.
토요일
나도, 별이도 종일 집에 있었는데 답답한 별이가 저녁에 피씨방에 가겠다고 한다. 자주 만나는 친구랑 약속을 한 모양이다. 깁스하느라 반바지를 입었는데 가지고 있는 바지는 모두 통을 줄여 놓아서 깁스한 다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반바지 입고 나갈 수는 없고 어차피 학원도 다녀야 하고 교회도 가야 하니 추리닝을 하나 사왔다. 색상도 맘에 들고 기모추리닝이라 따뜻한데다가 외출용으로도 괜찮을만한 걸 사가지고 왔더니 그걸 입고 8시쯤 나가서 11시쯤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피씨방은 아파트 초입에 있는 독서실 건물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
11시가 지나도 안돌아오길래 카톡, 문자를 날렸다. 평소에는 늦게 온다고 하면 그냥 들어가 자는데 깁스를 했으니 불안해서 잘 수가 없다. 대답이 없어서 올라오는 모양이다 생각했는데 맞다. 조금 지나니 들어온다.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어제끼고 샤워를 하겠단다. 목발 짚고 나갔다 오는 걸 우습게 알았는데 나가보니 힘들었던 모양이다. 아파트 진입로가 경사졌는데 올라오기 힘들었댄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주일은 꼼짝 않고 집에만 있겠다고 한다. 샤워를 하고 나오더니 이어 말한다. 도저히 다니기 힘들다고 일주일은 꼼짝 않고 집에 있다가 금요일에 병원 예약한 날 가서 깁스를 풀어달라고 하겠단다. 헐.
3.
일요일
식구들이 다 있었으니 같이 이야기하며 노는 것은 아니지만 견딜만 했을 것이다. 티비보다 노트북에 가 있다 책도 보다 우리가 잠든 후에 화장실 가려고 밤늦게 나가보니 영화를 보고 있더만. 슬슬 목발을 귀찮아 하고 내가 안보는 사이에는 목발 없이 움직이기도 한다.
4.
월요일
퇴근하고 집에 가보니 아이가 시무룩해 있다. 꼼짝 못한지 벌써 며칠짼가. 답답하기도 했겠지. 병원 예약을 좀 당기면 안되냐고 묻는다. 금요일까지 기다리기 힘드니까 목요일쯤 가서 깁스를 풀어달라고 하겠다고. 자기가 판단하건대 많이 다친 게 아니라 이제는 괜찮다는 거다. 의사는 처음 다쳤을 때 조심해서 완쾌되지 않으면 만성이 된다고 조심하라고 했는데. 축구를 안할 것도 아니고. 말을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예약은 병원에서 잡아준 거라 바꿀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는 움직일 때 목발을 거의 짚지 않고 돌아다닌다. 저래도 괜찮은건지... 이왕 고생할 때 좀 더 신경쓰면 훨씬 나을텐데 그 생각을 못한다. 젊어서 그런가..
---------------------------------
별이가 깁스를 하는 바람에 엄마와 아빠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다.
일단 전철타고 학원 다닐 수 있다는 말에서 아이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지 않는구나... 하고 느꼈는데 또 하나는,
깁스하고 와서 처음에 별이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 미끄러질 뻔 했었다. 운동신경이 남다르기 망정이지 둔했다면 뒷통수까지 깨먹을 뻔했다. 달리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아픈 발을 짚는 바람에 아아악~ 소리를 지르더라. 그걸 보고 마른 걸레로 화장실 내부를 다 닦아 내고 드라이기로 타일을 뽀송하게 말려 놓고 맨발로 들어가라 했다. 씻을 때는 욕조에서 씻고 튀어 나온 물은 다시 닦아서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잘 쓰고 있었는데 별이아빠가 갑자기 화장실 타일이 차가워서 발이 시려운데 꼭 이렇게 사용해야 하느냐고 투덜거린다. 아니 그럼 장애인보다 멀쩡한 사람이 우선이야? 화장실 안에는 마른 수건을 접어서 넣어놨으니 그걸 밟고 볼일을 보면 될 테고!! 물론, 별이아빠도 감기가 심해서 컨디션 최악이고 차가운 과일도 물도 안먹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깁스해서 화장실 출입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물기가 있으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별이가 먼저 아닌가? 어떻게 자기만 생각하는 언사를 할 수 있는지. 화가 치밀어서 일부러 제일 상처가 될 말을 해줬다. "그럼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던가!!!" 하고 소리를 꽥!
며칠 사이에 상태는 확실히 좋아져 보이기는 하는데 이왕에 깁스를 했으니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쉬기도 하고 제대로 회복이 될 때까지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어쩔라나 모르겠다. 평생 축구하면서 살게 될텐데 말릴 수도 없고 말린다고 듣지도 않을거고. 제 몸 제가 생각하려면 더 나이를 먹어야 하나.
'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주일에 두 번 이하... (0) | 2013.02.07 |
---|---|
고민중.. (0) | 2013.02.05 |
잉카계 (0) | 2013.01.31 |
알차게 보낸 하루 (0) | 2013.01.29 |
인터넷 레시피 따라하기, 실망 (0) | 201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