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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M의 장인상

 

M의 회사에서 M이 장인상을 당했음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바로 이틀 전, 내가 그 집이 궁금하다면서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전화는 하지 않았다. 문자로 할까 하다가 전화가 낫지 생각만 하고 결국 통화 한 번 못한 채 부고를 받고 말았다. 전화해봐야겠다고 얘기했을 때 별이아빠도 꼭 해보라고 했는데 부고를 받고나서 전화를 안했다고 했더니 해본다고 하고 왜 안했느냐고 화를 조금 낸다. 우리 부부는 전화를 해봐야 한다는 부담을 둘 다 느끼고 있었나보다. 나는 외려 더 화를 냈다.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나한테 미루지 말라고. 전화하는 일이든 집안일이든 어떤 일이라도 나한테 조금도, 절대로 미루지 말라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을 오히려 별이아빠에게 내는 것으로 분출한 것일까. 나는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전화하는 것이 편하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다. 이 증상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하다.

 

이상하게 누군가가 생각이 나면 꼭 이런 일이 생긴다. 전에 은숙언니도 그래서 연락했다가 죽기 바로 전날 마지막 만나고 왔었는데. 그때 미뤘더라면 얼마나 내가 가슴을 쳤을까. 생각이 날 때, 갑자기 떠오를 때 전화를 하면 참 좋을텐데 성격인지 마음은 있어도 전화하는 게 쉽지 않다.

 

날씨가 덥기는 하겠지만 오늘 날씨, 발인하기 좋은 날이다. 비가 오면 당연히 어려울테고 날씨가 흐리면 햇볕 강하지는 않아 좋을지 모르겠지만 우울한 날씨로 인해 보내는 슬픈 마음이 더 깊어질테니...

 

일요일 오후 당직이 있는터라 별이아빠는 P님과 같이 토요일 저녁에 문상을 했고 나는 어제 저녁에 선배 부부와 같이 문상을 했다. 둘 중 하나가 갔으면 됐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연로한 아빠 때문인지 남의 일 같지 않고 연약한 지현엄마가 걱정되었다. 조문하고 나서 지현엄마를 보고 "내가 와야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왔어" 그랬다. 안갔으면 섭섭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안갔으면 위로를 못해줬다는 부담을 떨칠 수 없었을 것 같고. 잘 다녀왔다.

 

M은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다른 모든 친구들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것 같았다. 별이아빠가 문상갔더니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더라니. 위로를 하러 가면 좋을 사람 둘에게 내가 연락을 하는 바람에 그 둘에게 연락받은 여러 친구들이 다녀갔다. 연락을 하고는 내가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혼란스러웠는데 적어도 연락할 때 내 마음은 '위로'에 초점이 맞춰졌으니까 M이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플 때 위로하는 것이 기쁠 때 기쁨을 같이 나누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또 좋은 직장, 높은 직위에 있어서 겹겹이 쌓이는 조화와 수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간다 할지라도 그 아픈 마음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친구들이 아니겠나. 지들도 남의 애경사에는 발벗고 나서는데...

 

별이아빠가 내게 아무런 말, 의논도 없이 K에게 연락을 해서 장례식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내 인상이 구겨지기에 앞서 스스로도 연락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생각했을텐데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별이아빠는 K가 혼자 올 줄로 알고 연락을 했다고 한다. 막상 장례식장에 도착해 보니 부부가 함께 왔더라고. 어떻든 나도 M 부부도 P님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고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스스로도 후회막심...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다. 자책하며 스트레스 받는 사람에게, 게다가 이미 끝난 일에 말해봐야 서로 힘드니까 더이상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별이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다. 나름대로 생각깊은 사람이고 신중한 사람인데 왜 그랬을까.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다는 건 내 반응을 예상할 수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별 생각없이 물어보지 않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누구나 잘못 결정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으니까! 로 결론을 내버렸다. 그렇다. 그냥 뭐에 홀린듯이 실수한 것이지. 그렇게 쉽게 생각해버리자.

 

M 부부와는 분명 맞지 않는 코드가 있다. 그러나 맞지 않는 코드는 그저 우리의 서로 다른 점일 뿐, 그들은 좋은 친구들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것,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지낸다는 것 이 두 가지로 우리의 관계, 서로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질 것이다.

 

나는 가난하지만 좋은 친구가 많은 진정한 부자이다. 그것이 내 자랑이고 내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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