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달 전, 11월 정모 때만 해도 송년회에 참석을 못한다고 했는데 그날 내게 떨어진 불똥과 그로 인한 일주일의 깊은 고민 끝에 나는 내게 튄 불똥, 책임을 맡지 않기로 결정을 하고 그 짐을 원성이 어깨에 얹어주었었다. 그리고는 그 친구에게 넘겨준 짐이 미안해서 송년회에 참석을 해서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안하니까!!
정왕역에서 12시 20분에 만나 시화이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원성이 말이 종이컵, 일회용 수저, 일회용 그릇류 등 일회용품이 필요없댄다. 난 그런 것만 빼곡히 메모를 해갔는데. 없거나 모자를까봐 걱정은 되었지만 일회용품은 제외하고 장을 봤다. 삼겹살 3키로, 목살 600그람, 야채, 귤, 물, 술 등.. 술을 얼마나 살 것이냐가 고민이었는데 있는만큼 먹게 되니 많이 사지 말자고 하고 소주6병, 미영이용 청하 2병, 막걸리파를 위해 막걸리 5병, 맥주 3큐팩을 사고 고기도 고민을 하다가 1인당 300그램 쯤으로 계산해서 샀다.
오이도에서 방어와 농어를 골라 회를 떠달라고 하고 바로 옆에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원성이는 한 두 끼니 건너도 배고픈 걸 모른다고 하더만 나는 식사시간이 지나면 바로 말을 할 수가 없다. 기운이 없어서... 해물칼국수로 기운을 차리고 회와 매운탕에 쓰려고 부산물까지 받아서 차에 싣고 펜션을 향했다.
원성이가 다녀본 펜션에 비해 시원찮다고는 하지만 아래 위층으로 화장실도 3개, 방도 3개, 좋기만 하다. 짐을 풀고 주방을 살펴보니 우리 인원이 충분히 쓸 수 있는 식기와 수저가 있었다. 커다란 남비에 물을 끓여 수저와 집게, 칼 등을 팔팔 삶아내고 끓는 물에 식기를 모두 데쳐냈다. 흠흠.. 이정도면 탈이 날 염려는 없겠지. 그리고 야채를 씻고 다듬고 매운탕거리도 씻고 쌀도 씻어서 앉혀놓고 준비를 하는 중인데 성호차(성호, 경숙, 대권)가 도착을 하고 이어 경옥이 차가 도착했다.
매운탕은 성호가 끓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는데 오호, 예상밖으로 게으른 성호가 매운탕을 기가막히게 맛있게 끓여냈다. 매운탕거리가 너무 많아 생선대가리는 삼겹살 구울 때 구워먹으려고 남겨두었는데 매운탕 인기가 좋아 다먹어 치워 나중 올 친구들을 위해 구워먹으려던 걸로 또 한 냄비 끓여냈다. 갈수록 맛이 더 좋아지네.. ㅎ
삼겹살은 친구들이 모두 도착할 8시쯤에 굽자고 하고 일단 회 3접시 중 한 접시를 내어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밥도 어찌나 맛있게 지어졌는지 매운탕에 밥도 먹고 회도 먹고 술도 먹고...
선희 차, 영균이 차(영균, 미영), 병열이 차, 진한이 차, 진수 차가 도착, 2진 식사가 시작되고 그쯤에서 전임 방장 원성이의 이임사와 차기 방장 원성이의 취임사가 있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술과 담소. 영균이가 윈저 2병을 가져오고 경숙이가 빠이주를 가져와서 주종도 참으로 다양했다. 삼겹살도 이쯤에서 굽기 시작했을걸.
작정한 대로 성호가 윈저를 섭취.. 꼴랑 종이소주컵으로 두 잔 먹고 가버리는 참으로 경제적인 성호 얼굴이 폭발할 것 같다. -.-
펜션에 도착해서 처음에 준비한 건 나였지만 일찌감치 게으름에 떨어지고 경숙이가 왔다리갔다리 부지런히 친구들을 챙겨준다. 오오.. 뒤태가 아름다운 것들은 다 이유가 있어!!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늦게 미애가 와서 전철역으로 픽업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모두 술을 한잔씩들 한 터라 펜션올 때 길 못찾는다고 구박받은 병열이가 운전을 하고 네비로 원성이가 타고 나갔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 건 네비 탓이었다지 아마? 다음날 당직이라는 선희가 출발하는 걸 보고 나는 편안한 잠자리로 찾아 들어가서 그 이후에는 거의 귀로만 정보를... 미애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고 다시 나는 잠자리로.. 경숙이가 내 옆자리로 자러 들어온 후에는 또 미애가 부지런을 떨고 다닌 듯. 상도 모두 치우고 설겆이도 하고... 미애, 늦게 와서 고생만 했네.
밤에서 새벽 사이에 선희, 병열이, 진수가 돌아가고 남은 인원은 13명 중 10명.
다음날 아침!!
부지런한 경숙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 아침을 먹어야 한다고 돌아다니는 통에 거실에 자던 친구들이 깨고 이어서 위층 두 방에 친구들이 깨고... 아침으로 라면을 끓이고 어제 남은 밥을 한톨도 남김없이 말아먹고 몸에 좋다는 아침사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밤에 내려서 하얗게 쌓인 눈을 내려다보며 느릿느릿하게 시간을 보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음식쓰레기, 쓰레기, 재활용 정리해서 버리고 가지고 갈 남은 것들을 챙겨보니 술 몇 병과 고기 조금, 상추 조금 뿐이었다. 음식남고 냉장고 가득한 거 싫어하는 내맘에 딱 드는 상황.
그리고 전날 우리가 먹은 술병을 줄 세워보니 얼마전에 밴드에서 내가 얘기한 대로 13명 각 1병씩!! 귀신같애~
정리하고 짐 챙겨 나와 펜션 앞에서 참석한 친구들 얼굴이 다 안보여 섭섭한 단체 사진 몇 장 찍고.
나오는 길에 구봉도에서 눈내리는 모습 바라보며 연포탕과 칼국수를 먹고 나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으로 송년회의 막을 내렸다.
이번 송년회를 보낸 내 감상은 잔잔하게 흘러갔다는 느낌. 원성이의 합리적인 사고와 치밀한 성격에 감탄했고 부지런한 여친들에 놀라고, 적당히 먹고 마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게 되어 좋았다.
불혹은 사십이 아니라 오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