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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생각하게 하는 친구들

 

예정대로 2월 4일, 연희가 한국에 들어왔고 5일 메일이 왔다. 세미나가 끝나는 토요일 오후에 만나자고. 그러면서 덧붙인 말, 이번에는 너랑 둘이 만났으면 좋겠어.

 

2012년 10월 30일, 만난지 이십여년 만에, 소식 끊긴지 십 수 년 만에 소설속 이야기처럼 연희를 만났고 그 후 1월과 7월에는 연희를 보고 싶어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났었다. 수십년 세월 못만나고 지내다가 최근에 자주 만난 셈인데 여러 친구들이 함께 만나다 보니 다들 반가워하고 기뻐하나 살아온 세월과 생각의 차이, 그리고 짧은 시간 때문에 대화 다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것이 연희는 아쉬웠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이번에 만나고 나면 연희는 또다른 세상으로, 한치 앞을 예견하기 힘든 세상으로 떠날 터라 그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이번에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만나면 또 얼굴만 보고 마는 상황이 될테니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중, 연희의 메일은 내게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예정했던대로 이번 주중에 선교지로 출국한댄다. 우리나라보다 40여년쯤 뒤떨어져 있다고 했고 최근에 문호가 개방되었지만 부패지수가 높아서 모든 것은 직접 가서 부딪혀 봐야 한다고. 놀라웠던 사실은,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간다고 해서 연희 부부만 나가는 줄 알았는데 여섯 가정과 삼, 사, 오십대 싱글 다섯명이 같이 나간댄다. 게다가 여섯 가정은 어린 아이들이 딸린 젊은 가정이라고. 200여년 전에 지어진 선교관을 보수해서 그곳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한다. 각 가정당 방 하나씩. 그래서 이삿짐도 각 가정당 이민가방 두 개란다. 필요한 가재도구와 전자제품을 담아 컨테이너를 가지고 가긴 하지만 과연 통관에 어려움은 없을지, 가지고 가는 전자제품을 사용할만큼 전력 사정이 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연희가 이민을 간 게 고3, 그때 한국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민간 것처럼 지금은 미국을 모두 정리하고 새롭게 이민을 떠나는 셈이라고 했다. 미국으로 갈 때는 정보도 있었고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정보도 없는데다가 더 험한 세계로 가는 것이다. 연희야 아이들을 다 키워내고 부부만 떠나는 거라지만 지금 어린 아이들과 함께 그 길을 나서는 30대 부부들은 어떤 각오로 가는걸까. 내가 볼 때는 목사 부부인 연희네보다 함께 길 떠나는 젊은 부부들의 신앙이 더 좋고 대단한 것 같다. 아아.. 정말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에서 떠나 미국 여러 도시를 유목민처럼 떠돌아 다니면서도 작은 상자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녔다고 한다. 이번에 모든 짐을 버리고 끝내 가족 앨범까지 정리하면서도 그 작은 상자를 차마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일기장,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 엽서, 수유여자중학교 교표, 이름표, 뱃지 등등..

 

내게도 그런 작은 상자가 하나 있다.

http://littletree-kang.tistory.com/706

 

저 상자 속, 노트 안에는 연희가 남긴 페이지도 있다.

새벽 하늘에 긴 강물처럼 종소리가 흐르면 의례히 기도로 스스로를 잊는 그런 사람으로 살게 해달라는...

푯대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게 해달라는 그런 내용의 글들..

http://littletree-kang.tistory.com/1241

 

아이들 앨범은 아이들에게 주고 가족앨범에 있는 사진 중 일부만 스마트폰에 찍어 보관하고 모두 버렸다는 말은 듣는 내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이 친구의 길은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길이구나. 한 번 버리면 끝인 소중한 추억의 앨범까지도 모두 버리고 삶의 터전인 집마저도 정리하고 달랑 가방 두 개로 떠나는 여행. 게다가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동체 생활.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곳에서 한동안 적극적 선교활동은 하지 않을거라 한다. 일단 가서 정리가 되면 어학원을 설립한다고. 그 나라의 종교나 문화, 필요에 따라서일까. 사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방전도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훌륭하고 체계적인 방법은 아닐 것이다. 각 나라와 각 사람에 맞게.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웠듯이 그렇게 하는 거겠지.

 

지난 여름에, 연희와 두 딸이 들어왔을 때 그 딸들을 또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작은 선물을 했었는데 연희는 그것이 부담이었나보다. 만나자마자 맛있는 거 사겠다고, 꼭 자기가 사야 한다며 비싼 샤브샤브를 먹자고 하기에 샤브샤브 1인분 가격이면 둘이 먹고도 남을 국수전골을 먹자고 했다. 마침 연희도 나도 국수를 좋아하니까.

 

차 - 대추차 - 를 마실 때는 창밖으로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연희는 눈이 펑펑 내리는 걸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수십년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스키장 눈은 보았어도 내리는 눈은 처음이라나. 며칠 후면 사철 덥고 습한 나라로 떠나는 자기에게 하나님이 보내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그곳에 들어가면 비자 때문에 70일에 한 번씩 방콕으로 나올거라고 했다. 거기가 가까우니까. 친정엄마와 시아버지가 계셔서 일년에 한 번쯤 미국을 갈 계획인데 한국을 경유할테니 그때나 만나자고 한다. 필요한 소소한 것들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챙겨서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그곳 우편사정이 그럴만해 보이지도 않더라며 가봐서 필요한 거 생기고 우편사정이 가능할 거 같으면 나한테 부탁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연락이 끊어지지 않겠나 염려하는 내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라 한다. 그곳 통신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일행중에 어린아이들이 많고 학교 교육을 홈스쿨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가서 제일 먼저 신경쓸 부분이 인터넷 환경인지라 카톡은 될 거라고.

 

다음날 새벽에 승용차로 대구까지 가야 하니 조금 일찍 헤어지는게 좋겠다 싶어서 6시가 되기 전에 카페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 태우는데 별이 주라면서 하얀 종이를 하나 내민다. 안받겠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받고 말았는데.. ㅠㅠ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금액이 크다.ㅠㅠ 택시안에 던져넣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롭다. 선교지로 떠나는 친구에게 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대접을 받다니.. 마음이 너무 무겁다.

 

집에 와서 주말 내내, 연희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했다.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미국 친구들 - 연희, 정순이, 은미 - 을 생각해보면, 모태 신앙인에다가 자신의 꿈인 경제학자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다가 돌이켜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한 연희는 그렇다 치지만 내 앞에서 기독교와 기독교인을 비웃던 정순이와 무신론자이며 사색가인 은미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나서 보여주는 모습은 내게 충격이고 도전을 준다. 그들의 삶의 모습,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보면 내가 너무나 부끄럽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연희는 한국보다는 미국에서의 삶이 신앙생활하기에 조금 더 여유로워서 그럴거라고 위로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이리저리 흔들려 내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는 이유는 나 또한 이 세대를 본받아 보이지 않는 높은 가치보다 보이는 천박한 가치에 내 마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요즘 노후에 대한 염려가 많다. 건강에 대한 것들, 경제적인 문제들, 늙어 해야 할 소일거리들... 한국 경제와 우리의 은퇴, 아직도 길게 남아 있는 수명,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에까지 얘기를 나누다가 연희는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한 세대가 남았을 뿐이라고. 그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예수님이 다시 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게 될 거라고. 그 순간 내 머리가 쿵!!

 

나는 왜 미래를 걱정하는 것으로 현재를 소비하는가

 

먹을 것이 없을까봐? 입을 옷? 거처할 집? 아니다. 적어도 입고 먹고 거처할 곳에 대한 염려는 없다. 그런데도 계속 염려하는 것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내 몸 아플까봐, 고독해질까봐, 남보다 내가 가진 것이 적을까봐, 남보다는 내가 더 잘나야 하는 욕심에 의한 염려. 예수님은 현재를 잘 살라고 했지 미래를 바라고 그 준비에 매달리거나 염려하라고 하지 않았다. 현재를 아름답게 살다 보면 미래도 아름답게, 저절로 준비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지금 이웃에게 잘하고, 지금 즐겁고 기쁘게 감사하며 살라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실체도 없는 염려, 이제 더는 하지 말자. 노화와 병고? 그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파야 한다면 그 고통도 고스란히 겪어내자. 늙어 당하는 병고는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과의례가 아니겠나. 누구나 다 그 과정을 겪고 다른 세상으로 갔으니 나 또한 그 길로...

 

앞으로 일은 언제까지 할거냐고 묻기에 3년 정도 이 일을 더 하다가 그 후에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지금까지 50년을 살아오면서 한가지 일만 했으니 앞으로 남은 삶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내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묻는다. 몇년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인데, 무슨 일이든 봉사의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했는데 그 이유는 하고 싶은게 있다 해도 그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 거다. 할 수 있는 일조차도 내게 열려 있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뭘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얼마 전에, 은미가 한국에 나왔을 때 엄마 팔순 전시회에서 보고 미국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자고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못 만났다. 사실, 우리가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은미도 지금 뭔가 의미있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었다. 내가 볼 때는 멋지기만 한 대학교수라는 타이틀이 은미에게는 더 이상 의미있는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꼭 다시 만나 은미의 생각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랬더라면 내가 또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을텐데.

 

지난 1월 초 은미를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연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충격도 받고 여러가지 생각도 했다. 나를 생각하게 하는 친구들, 나를 돌아보게 하는 친구들. 나의 스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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