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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36년쯤

 

 

 

 

36년쯤이다. 1979년 2월 이후로는 본 적도 없고 소식도 듣지 못했던 친구들 일곱과 가끔 만나는 미화까지 아홉이 종로에 있는 식당에서 만나기까지의 기간이.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남녀공학 화계중학교로 변했고 우리 학교의 이름은 사라졌다. ㅠㅠ 덕분에 동창찾기 밴드가 여기저기 붐을 일으켜도 중학교 동창은 찾기 힘들고 밴드 회원은 별로 늘지 않는다.

 

모인 친구들 중에 나랑 같은 반을 한 적이 있어서 잘 아는 친구는 넷, 다른 반이었으나 얼굴이랑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 하나, 셋은 전혀 모르는 친구였다.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의 정성이 대단했다. 나같으면 오지 않았을텐데. 안산에서 온 수연이, 아마 나는 안산에 살았대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설렁설렁 걸어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 쉽게 나가긴 했어도. 저녁먹고 노래방... 1차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내가 일어나면 분위기 깨질거고 멀리서 온 친구들한테도 미안해서 끌려가듯 노래방에 따라갔다. 11시에 나와서 커피를 한 잔 하자는 걸 가야 한다고 나만 빠져나왔다. 다음에는 부산으로 놀러오라는 명희와 적극 호응하는 다른 친구들. 불가능만은 아닐거다. 이제 그만한 여유가 있을 나이.

 

중학교 친구들 중 친했거나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다 연락이 되고 가끔씩 만나며 살기 때문에 특별히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중학교 졸업 이후 연락이 끊긴, 가끔씩 생각나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평소에는 아는 척도 안하다가 방학 때마다 편지를 주고 받던 친구, 얼굴이 달덩이 같던 친구, 나만 보면 얼굴 빨개지던 친구, 공부 지지리 못했으나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 참 잔인한 시절이었다. 학급 성적표를 칠판에 붙이고 전교 1등에서 100등까지 명단을 중앙 현관에 붙이던 시절. 칠판에 붙은 성적표를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뒤에서 두번째였어. 하하.. 그러나 유쾌했던 친구. 지금은 어디서 뭘할까.

 

그래도 나는 중학교 시절이 좋았다. 만나보니 다른 친구들도 그렇다고 하고. 아마 감수성 예민할 때, 좋은 환경에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아서겠지.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여자 교장선생님의 카리스마,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젊고 교양있는 좋은 선생님들. 환경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았던 시절이었다.

새로운 학년이 되면 늘 느꼈던 을씨년스러움은 친했던 친구들과 헤어진 탓이었을 게고 그것이 지나고 나면 피어나는 진달래 개나리 등 봄꽃들, 새 학년 새 친구들과 익숙해질 즈음, 합창대회 연습을 할 즈음에 온 교정과 교실을 가득 채우던 아카시아 향기, 여름의 매미소리와 숲향, 가을의 붉은 단풍과 방과 후 낙엽태우던 향기.. 나의 자연에 대한 그리움은 어릴적 방학 때 놀러간 시골 외가만이 아닐 것이다. 중학교 시절은 자연속에서 살았던 개똥 철학자의 시절. 돌이켜보면 고뇌마저도 아름다운 행복했던 시절, 꿈같은 시절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더욱 아릿한.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관계, 어떤 우정이 만들어질지 모르겠으나 기대하지 않고 천천히 가기로 한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만나온 친구들만으로도 충분하므로. 그러나 또 새로운 만남은 내 다른 세계를 보여줄 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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