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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가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심심함'을 다르게 평가한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저 이미 있던 것을 반복하고 재생할 뿐이다. 이 분주한 반복이 멈출 때, 무언가를 하지 않고, 혹은 다른 무언가를 시작해야 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그저 심심함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지나간 시간과 경험에 차분한 시선을 보낼 수 있다. 창조적 사색의 시작이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이 상태를 '깊은 심심함'이라 정의한다. 깊은 심심함은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이다. 심심한 자만이 가만히 생각을 하고, 경험의 알을 부화시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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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정(평화연구자)
시사인 388호 "까칠꺼칠" 중에서.
내 시선을 붙드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