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여름, 겨울방학에는 홍.수.가 나를 만나러 왔었는데 이번 여름방학에는 내가 홍.수.집으로 갔다. 에어컨을 설치했으니 시원한 즈이 집에서 밥먹고 근처 독립영화관에서 독립영화 한 편 보자는게 홍.수.의 제안이었는데 더운 날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시원한 데서 만난다 해도 오랜시간 밖에 있는게 피곤할터, 마침 나도 홍.수.를 만나면 영화를 봐야겠다 고르던 참이라 흔쾌히 그리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우리집에서 전철만 한시간 걸리는, 가깝지 않은 홍.수.네 집에 갈 때는 이사 후 처음이라 두루마리화장지를 사가지고 았다. 술술 풀리라고. 점심으로 김치말이국수를 해줘서 먹고
잠시 얘기하다가 시간맞춰 동네 영화관에 갔다. 말로만 듣던, 인터넷에서만 보던 성미산 그 동네..
관객은 달랑 홍.수.와 나 뿐이었다. 평일 오후 2시에 그것도 흥행과 전혀 상관없는 다큐 독립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뭔가 조금 아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 시설과 공간과 시원함이..
영화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늙은 어머니와 어머니를 봉양하러 내려온 같이 늙어가는 아들의 2년 여 생활을 아무런 색깔을 입히지 않고 날것 그대로 찍어낸 다큐. 큰 재미도 감동도 없었고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홍.수.가 원장으로 있는 어린이집을 둘러보고 성미산 산책을 하고 동네 책방에 들러 책 구경도 하고 시원한 차도 한 잔 마셨다. 굳이 맘에 드는 책을 한 권 고르라는 홍.수.에게 받은 책 선물은 스콧 니어링의 "희망"이다. 이 책을 읽으면 희망이 보일까.
동네 책방에는 어린이 책이 많았고 특이하게 사회과학서적이 많았다. 옛날에는 대학가에 사회과학서적을 파는 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지 아마. 이 동네 책방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의 문화다방, 공부방, 놀이방 역할을 하는 듯 보였다.
생협이 있고 발효빵집이 있고 여기저기 뜻맞는 사람들끼리 지어서 함께 사는 동호인 주택이 있었다. 뭔가 마을공동체가 잘 살아 있는 그런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동네에서 살면서 이웃과 같이 나누고 공부하고 교제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횡성으로 이주했다고도 한다. 뜻맞는 사람들이 퇴직을 하고 지방으로 같이 이주한 모양인데 그만한 관계를 가꿀 수 있다는 게 놀랍고 부럽다. 홍.수.는 내게 자기네 동네로 이사오라고 한다.
적당히 일찍 집에 돌아올 생각을 했는데 결국 다시 홍.수.집에 가서 저녁도 먹었다. 홍.수.가 만들어 놓은 울금삼계탕. 마침 복날이었다.
사람사는 동네 같고 홍.수.네 집은 사람사는 집 같았다. 홍.수.는 제손으로 밥과 반찬, 국수, 삼계탕을 해서 친구를 대접한다. 나는? -.-
아직 아빠를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 때, 여러가지 하고픈 말이 많은 시기일텐데 내가 말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살다보면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는 내 친구가 들어줘야 하고 내 친구가 말하고 싶을 때는 내가 들어줘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지를 못하고 산다. 귀기울여 들어주기... 좀 더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맺힌 마음을 풀어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