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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이유



1.

월, 화.. 멘탈이 털리도록 바쁘고 정신없었다. 수요일 오전은 원장 휴진, 오후는 내과 휴진이라 여유가 있는데다가 수술까지 있어 외래는 한가했다.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며 이야기꽃도 피우고 퇴근 후 있는 병원 송년회에 편하게 가라는 신의 계시일거라 입을 모았는데...

퇴근시간 한시간 남짓 남겨두고 평소 입퇴원하는 환자수만큼 입퇴원이 줄을 이었다. 아휴. 어찌나 정신없이 몰아쳤는지. 간호과에 나이트 샘 달랑 한사람 남겨놓고 송년회 장소로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남아야 할밖에. 듀티대로 하면서 복이 없거니 하는거지 뭐.

주말마다 인파에 밀려다니던 광화문에 차가 다니고 사람이 많지 않다. 주말마다 바라보던 그 빌딩의 지하가 송년회 장소. 그 앞 광장에 커다란 촛불이 우뚝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다. 천막들도 있고 평일이지만 여전히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2.

30년 전 병원을 오픈할 때부터 함께 일하던 오픈 멤버가 지금까지 그대로 근무하고 있는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의 역사가 자랑이 될만도 하지만 병원 시설은 좀 열악한 편이다. 어제 송년회 때 원장 인사말 중에 100병상이 되어야 전문병원으로 할 수 있는데 우리 병원이 작아서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 절반에서 조금 더 많은 병상수. 100병상을 하려면 지금 건물로는 불가능할 거고 원장 아들도 우리병원 닥터이기는 하나 원장 나이가 이미 많아 새롭게 도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그래서 비수술치료 쪽으로 가는 모양이다. 장비면에서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대 있는 병원도 많지 않은데 우리는 3대라고. 건물이 좀 더 컸더라면 더 클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서 한계인 듯하다.

원장이 피곤한 스타일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느끼고 있었지만 어제 잠깐 나와 인사하는 걸 보고 왜 지금까지 30년 이상 오픈멤버들이 근무할까 하는 궁금증이 풀렸다.

직원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상황은 어렵다지만 희망을 갖고 있고 모든 부족함은 자신이 이제 늙고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걸 보고.

아마도 내가 경영해본 경험이 있기에 더 잘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입장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도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으니까.

저녁만 먹고 2차 없이 끝내는 회식문화가 맘에 든다. 게다가 50명 가까이 참석한 직원들 중 술로 행패부리는 사람도 없고. 한두잔 먹는 사람 있는 정도? 마지막에 행운권 추첨 13건을 했는데 못받아 내심 섭섭한 직원들에게 참석자 전원 차비 3만원씩 주겠다는 말은 큰돈 아니지만 직원들 기분좋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소소하게 마음 쓸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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