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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생에 마지막 이사날..

1.


어제는 친정 이사하는 날이었다.

엄마, 아빠는 이제 노쇠해서 스스로 이사를 챙기기에는 불가능할 지경이 되셨다. 지난 10월에 입주할 때도 내가 챙겼고 그 집을 팔고 작은 아파트로 옮겨앉는 과정도 내가 챙겼다.엄마, 아빠 모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물, 이땅에서 마지막으로 산 집이 될 것이다.

날이 추웠다. 무지하게 추웠다. 따뜻한 모자를 쓰고 두툼한 외투를 입은 두 노인은옷 속에 조그만 사람이 되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커다란 아빠와 무서운 엄마는 어느새어린아이가 되어서 내게 의지한다.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던 엄마는 나만 옆에 있으면 그런 증상이 싹 사라진다고 한다. 나를 보면 엄마는 걱정이 사라지고 엄마를 보면 나는 걱정이 커진다.

도배하는 동안 이사짐은 대기하고 있고 우리도 추위에 있을 곳이 없었다. 구들장 따끈한 식당에서 늘어지게 점심을 먹고 나도 두 시간 이상이 남아 근처에 있는 북카페에 갔다. 따뜻한 공간. 우유와 석류차와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생전 처음이었을 거다. 셋이 앉아 차를 마신 것은. 이런 뜻하지 않은 기회가 또 오게 될까.

엄마, 아빠는 자꾸만 작아진다.

2.

어제 하루, 3억을 들고 다니면서 맘껏 써봤다. 생전 처음으로. -.-;;

저녁에 엄마가 추운데 수고했다며 100만원을 주신다길래"똥그라미 하나 더 붙은 걸로 주시지?" 했건만 100만원짜리 한 장을 주신다. 흠.. 하루 일당으로는 괜찮지...만 엄마한테 돈 받는게 편치 않아서 사양하다가받았다. 받아들고는 "이걸로 TV를 하나 사줄께" 했다.

이사를 마친 후에 스스로 놀부형이라 부르는 동생놈이 왔다. 이모랑 별이아빠 다같이 모여앉아 저녁을 먹으며 반주도 한 잔 하면서 엄마가 돈 준 애기는 쏙 빼고 "TV는 내가 사줄께!!" 하고 의기양양 떠들었더니 동생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는지 "소파는 내가 살께, 그럼." 그런다. 소파는 이미 주문했으니까 돈으로 보내라며 그 자리에서 마주 앉은 놈에게 문자로 내 계좌번호를 보내줬다.

졸지에 짠돌이 아들놈에게소파를 얻게 된 엄마가 신이 났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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