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를 따라서 멀리 태안까지 걸으러 갔다 왔다.
얼마전 통영 이야기길을 다녀올 때도 그랬지만 일요일에 멀리 떠나지 못하는 내게 토요일 여행은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혼자 다녀오는 것보다 더 저렴한 실비와동호인들이 가이드 역할까지 해주니 이런게 바로 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충무로에서 아침 9시에 출발. 무박이었던 통영길과는 다르게 차창밖 풍경을 보면서,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면서 내가 멀리 떠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시간 남짓에 내 부모님 본적지이기도 한 태안에 도착했지만 목적지인 태안반도의 위쪽 끝 만대항까지는 한 시간 여를 더 달려야 했다. 태안을 지나면서는 편도 일차선일 때가 많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만대항에 내려서 예약한 식당에서 각자 취향대로 미리 주문한 음식을 먹었다. 걷기신청을 받을 때 미리 매운탕과 조개탕, 두 가지 메뉴 중 정하게 했었다. 이런 행사를 여러 번 하다보니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무슨 일이든 매끄럽게 잘 진행하는 것 같다. 나는 매운 것 싫은데다가 조개류를 좋아하니 당연히 조개탕. 식당에 들어갔을 때 차려놓은 식탁을 보고 내가 잘 선택했다는 생각에 기뻤다.4인이 같이 먹어야 하는 게맘에 걸렸지만 100여 명 인원이 움직이면서 뭐든 다 입에 맛을 수는없는 법이고 워낙 맛이 있어서 그 정도는이해해 줄 수 있었다.근처에 이렇게 맛있는 조개탕이 있다면 종종 먹으러 가겠구만.
우리 팀이 식당으로 들어갈 때 보니 등산 동호회 한 팀이 우리처럼 전세버스 2대로 와서는 먼저 출발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걷다가 그 팀과 산길에서 만났다. 그 팀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팀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터라 비슷한 연배의 두 팀 사람들이 섞이면 다른 팀을 따라가는 중차대한 실수가 생기기 쉽겠더라. 역시나, 등산 동호회 팀이 먼저 지나가도록 하고 한참을 머물러 쉬다가 다시 출발.
해안을 걷는다고 해서 평탄한 길일 줄로만 생각했는데 모래사장으로 걸을 수 있는 해안보다는 산길을 걸으며 바다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해안이 훨씬 더 많았다. 산처럼 높지는 않아도 가파른 각도의 야산, 고갯길을 셀 수도 없이 오르내리니 다들 힘들어 한다. 나야 그래도 어느 정도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랄 수 있겠고 처음 따라온 사람들, 신발조차 등산화가 아닌 사람들은 꽤 힘들었을 것이다. 우스개로 더이상 못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으로 가든 되돌아 가든 가야 하는 길은 마찬가지. 바다를 헤엄치지 않는 다음에야 그 야산, 해안길을 걷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길 이름은 솔향기길. 이름대로 소나무 밭, 소나무 산이었는데 솔향기가 나지는 않는다. 아마 겨울이어서 그런 거 같다. 솔향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파도소리는 들리는데 바다 내음도 나지 않았는데 그것 또한 겨울이어서일 것이다.
점심을 먹고 1시쯤에 걷기 시작해서 일몰을 보려고 정해둔 꾸지해수욕장에 5시쯤 도착했으니까 4시간 정도를 걸었는데 그 길이 10키로 남짓. 시간과 거리를 따져보면 난이도를 알 수 있는 것이지.
가다가 몇 차례 잠깐씩 쉬면서 각자가 싸온 간식거리를 나누어 먹는다. 나는, 과자 나부랭이 두어 개 사가지고 간게 전부라 남들이 주는 거 얻어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지고 간 과자는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걷는 길에 얻어먹은 간식은 콜라비 세 쪽, 인절미 두 쪽, 생고구마 깎아온 것 한 쪽. 인원이 워낙 많으니까 다같이 나눠먹는 건 불가능하고 서서 잠깐씩 쉴 때 옆에 서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받는 정도. 쑥쓰러움도 없이 주는 거 잘도 받아 먹었다. 하하..
한참 걷는데어디선가 커다란 개가 한 마리 따라오더니 우리가 걷는 동안 함께 따라 걸었다. 88명이 걸으니 그 대열이 길기도 긴데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며 끝까지 같이 걸어서 우리가 일몰을 볼 때도모래사장에서 사람들과 장난도 하고 배깔고 엎드려 일몰도 보고 그러더라.
처음에는 단순히 사람들을 따라다니면 먹을 게 생기니까 따라다니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그것만도 아닌 것 같은게 백사장에서 사람들이 간식을 주니까 배가 부른지 모래사장을 파고 묻는다. 몸도 토실토실 살이 쪄 있었고 집나온 개는 아닌 게 확실해 보였다.
혹시 저 개도 외로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들을 따라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깡어촌 시골,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서 (십중팔구) 노인과 살면서 심심하니까 사람들을 따라다니다가 해가 저물면 제 집으로 가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걸어온 길이 꽤 긴데 혼자 돌아가는 길이 더 쓸쓸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명있는 것들은 모두 외로움을 타리니..
일몰을 보려고 발길을 멈춘 꾸지해수욕장은 작은 해수욕장이었다. 멀리 보이는 것이 몽산포 화력발전소라던가.
걷기 시작할 때는 햇살이 몇년 전 친구와 강촌 강변길 걸을 때처럼 따사롭더니 걷는 게 힘이 들어 땀이 나다가 일몰을 보려고 기다리자니 무척 추웠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땀이 식고 점점 추워지니 해는 왜 저렇게 빨리 떨어지지 않는고 조급증이 났다. 지난번 통영 일출처럼 멋지리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구름이 해를 감춰버린다. 수평선에 떨어지는 것을 보기도 전에 (구름이 감췄으므로 볼 수도 없었지만) 다들 발걸음을 대기하고 있는 전세버스로 옮긴다.
여섯시쯤 출발, 돌아오는 길은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노곤하고 피곤하고 졸리운 길이었다. 걷기를 향해 가는 길은 초롱한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며 갔지만 돌아오는 길은 눈을 떴다 감았다 반쯤 졸고 반쯤 자며 온 비몽사몽의 길이었다. 충무로에 도착하니 밤 아홉시. 가는 것도 세 시간, 오는 것도 세 시간. 정체 없이 잘 다녀온 길, 보람있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