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년 전 은미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일 이야기가 나왔었다. 은미의 생일은 음력 1월 8일. 중학교 때 알게 되었던 그 친구의 생일을 나는잊지 않고 있는데 내가 자기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사실에 은미는 놀라워했다. 은미의 어린 시절이나, 또 결혼 후에도 그다지생일이나 기념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아니라서 아무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제 생일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기억을 하고 있으니 놀라웠을 것이다.
은미랑 만났던 그 때가 생일 즈음이었을텐데 나는 선물 하나 준비하지도 못했고 (그 즈음에 나는 많이 바빴을 것이다.) 멀리서 온 친구에게 오히려 선물을 받았었다. 사실 은미가 한국에 온다는 애기를 들었을 때는 만나서 조깅화를 선물로 사주고 싶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나는 모처럼 만난 친구에게 아무런 정표 하나 나눠주지 못하고 그냥 보냈었다.
그 후로 우리는 만나지 못했고 가끔 뭔가 보내고 싶은 마음은 들었지만 은미의 주소도 모르고 물어본다고 해도 은미가 가르쳐주지도 않을 터라 기회가 없었는데 얼마전에 은미가 카드를 보내줘서 주소를 알게 되었다. 카드를 받고 바로 준비를 했더라면 생일에 맞춰서 선물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무엇을 보낼까 고민만 하면서 시간을 흘러보냈다.
2.
또 한 친구 영우의 생일은 1월 22일. 영우에게도 작은 선물을 보내고 싶었는데이 친구에게 보낼 선물이더 고민스러웠다. 영우의 까다로운 취향과 높은 안목 때문에. 하하..
부족한 것 없는 시대, 딴에는 고민을 하면서 고르고 골라도 받는 사람에게는 만족함이 없는 시대이다. 어릴 적에는 예쁜 노트 한 권, 예쁜 샤프 한 자루의 선물이 기쁘고 소중했는데. 지금은 어떤 선물이 기쁨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크고 좋은 것, 훌륭한 것들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시대, 어지간한 것은 흔해 빠져서 받는 순간조차도별 감동이 없는 시대에.
3.
선물 고민을 하던 중에 우연히 예전에 미술작품으로 만든 소품을 본 기억이 났다. 검색을 했더니 종류가 여러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손수건, 실크스카프, 우산 정도가 좋을 것 같았다. 사양을 보고 자를 들고 크기를 가늠하면서 실크스카프와 면 손수건, 우산을 주문했다.
설 연휴라 배송에 문제가 있었고 우여곡절을 거쳐 선물은 이제야 다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본 바와는 조금 달랐다. 실크스카프가 커다란 스카프일 줄 알았는데 작은 스카프,넥워머쯤 되는 스카프였다. 어쨌거나 미술작품이 그려진 거라는데 의미를 두고 구입했는데 모르겠다, 받는 친구들은 어떤 느낌일지. 특히 미국미술이야기로 블로그를 꾸리고 있는 은미는 어떤 반응일지.
은미에게는 클림트의 그림 키스가 페인팅된우산과손수건, 프리마베시 핑크빛 스카프를 보내주고(앗, 글고보니 다클림트의 작품이네. 은미가 클림트의 작품을 좋아하던가??)영우에게는 고흐의 스카프와 손수건을 보내야겠다. 그리고 하나 남은 고흐의 손수건은 가지고 다니다가 아침에 정훈이를 만나면 줘야지. 비록 작은 선물이지만 내 친구들은 선물보다는 선물에 담긴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길 거라.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