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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진정한 프로, 그녀

상계동 불암현대아파트상가에 가면 머리화자라는 내가 다니는 미용실이 있다.

꾸미는 감각도 없고 눈썰미도 없는 나는 머리를 자르러, 혹은 가뭄에 콩나듯 스타일을 바꾸러 미용실에 갈 때마다 어느 미용실을 가야할 지 막막했다. 친구들이 권하는 곳으로가보기도 하고 동네에서도 해보고 솜씨가 아니라 이름값 만으로 비싼 것 같은 알만한 미용실에도 가봤지만 그다지 만족하지 못해서 늘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수년 전 새로 이사한 아파트 안에 있는상가 미용실에 갔는데 거기가 바로 머리화자. 인테리어랄 것도 없이 소박한 미용실에 종업원도 두지 않고 주인이 혼자서 일을 하는데 하나 있는 아들을 보니 나이가 나보다는 10살 이상 어린 듯 해보였다. 이곳에서 머리를 잘라보니 꼼꼼하게 정성껏 일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몇 번 다녔더니 내 성격이랑 스타일을 대충 파악해 알아서 머리를 해준다.

나도 일하는 사람이라 아는 거지만 일을 맡길 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것저것 시시콜콜 주문이 많은 사람보다 전문가가 알아서 보기 좋게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같이 일하기도 쉽고 결과물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미용실에 갔을 때도 알아서 조언해주고 적당히 어울리게 해주기를 바라는데 대부분 책임을 물을까봐 그러는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머리화자 여주인은 내가 바라는 것처럼 내가 요구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좋지 않은지 설득하면서 조언도 하고 자신이 판단해서 머리를 해준다.

보통은 미용실 가서 머리만 자르려 해도 파마 해라, 코팅 해라, 영양 줘라 하면서 이것저것 시키고 뭉텅이 돈(?)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 주인은 파마를 하러 가도 한 번 다듬으면 보기 좋아질테니 이번에는 다듬기만 하고 더 있다가 파마하라고 권하는, 돈벌기를 마다하는 듯한특이한 사람이다.

최근에 미용실에 갔을 때 나는 파마머리가 여전히 낯설고 머리는 자라서 정신없이 느껴져전처럼 단발에 생머리를 하려고 맘을 먹고 갔는데 한 번 다듬으면 훨씬 낫다면서 다듬어주고 앞머리는 뎅강 잘라 앞머리만살짝 웨이브를 넣어주었다. 해주는대로 하고 보니 만족스럽다. 아무래도 단발 생머리는 여름에 더울테니. 몇 만원 들어갈 것을 단돈 만원으로 해결한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꼭 샴푸를 해준다고 하는데나는 보통 저녁 때 가서자르고 집에 가면 샤워하게 되니 그만두라고 하는데 다른 손님들은 다 샴푸를 하고 간다. 머리 잘라주고 샴푸 해주고 그러고 칠천원을 받는데 내가 볼 때는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에 비해 받는 수고료가 너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 있는 곳 아닌 담에야 그 정도를 받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정성껏 한다는 말이지.

나도 일하는 입장이라 그곳에 가서 일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럴 수 있을까,내 거래처에 저렇게 진심으로 대하는가하고 생각해 보곤 하는데 비교도 안된다는 생각에 그 주인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그 주인에게서 자기는 그 일을 선택해서 시작한 것이 참 다행이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를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즐겁게 정성껏 일을 하니 그곳 미용실에는 사람들이 버글버글 기다리는 법이 별로 없다. 손님이 미리미리 전화하고 시간 맞추어서 온다는... 그래서 다른 미용실보다 퇴근도 일찍한다. 욕심안부리고 사람 안쓰고 혼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까 분주하지 않고오는 손님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고 그것이 그 미용실이 오래가는 비결인 것 같다.

머리화자 미용실 그 젊은 주인이 앞으로도 오랜동안 그렇게 그 자리에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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