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도 없고 갈 곳도 없었는데 시간은 있었다. 아, 이런.. 뭔가 궁리를 해 놓을 걸. 이럴 때 제일 만만한 곳이 서점이다. 청계천 길을 평소와는 반대로 걸어 청계천의 시발점이 나오면 교보가 가깝다. 서점에 들러 사지도 않을 책을 이것저것 뒤적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살림에서 나오는 문고판 지식총서를 세 권 샀다. 문화상품권 1장을 주고.
책 소개 메일이 와서 그걸 좀 볼까 했는데 그 책은 아직 도착이 안되어 있었고.. 살림출판사에서 문고판 책을 이렇게 많이 낸 것은 처음 알았다. 살림이 처음 시작할 때 거래를 했었다. 지구를 색칠한 페인트공, 어린왕자, 또 뭐더라? 양귀자가 쓴 책을 했던 것 같은데.. 양귀자 본인의 책 내는 것으로 출판을 시작한 걸로, 사장은 남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나에게 외주 주는 걸로 시작했는데 자기 시설을 하면서 거래는 끊어졌고 그 후로 엄청나게 커졌나보다. ㅎㅎ (나를 만난 사람들은 다 잘 되어야 해!!) 난 판매용 도서를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편집한 책을 서점 진열대에서 만났을 때참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옛날에 알던, 거래하던 사람들 중에 잘 된 사람이 참 많구나 생각하면서 청계천으로 다시 향했다.
아까 지날 때 뭔 행사준비를 했었는데 그 사이 행사는 끝나고 예쁜 촛불이 청계천을 따라 흘러간다. 희생된 소방관을 위한 추모행사였다는데 흐르는 촛불을 보고 혼불이라고 하더라. 까만 물 위에 초롱초롱 내려가는 촛불이 예뻐서 카메라를 꺼내 몇 장 찍었다.
청계천의 밤 길은 그런대로 운치있다. 행사도 많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조명등.
언제 들어도 편안한 거리의 가수.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청계천이 생겨서 나는 참 좋다. 늘 혼자 걷게 되는 청계천에는 내 지난 기억들이 흐르고 앞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기억할 새로운 추억도 생겨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