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생활이 자연과 동떨어진 회색 빛 도시의 삶이라고 보통 얘기하지만 내 경우는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자연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살던 미아리는 서울은 서울이되 서울 같지 않은 변두리 가난한 동네였으면서 그렇다고 시골은 전혀 아닌 곳이었다. 나무도 꽃도 쉽게 볼 수 없었고 자연 속에 산다는 어떤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나서야 아파트 울타리에 심어진 장미나무가 봄이 되어 물이 오르면 나뭇가지마다 색상이 조금씩 다 다르다는 것을 보고 알았다.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사철나무(이름?) 잎 끝도 새봄에 나온 건 연한 초록빛으로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도 보고 알았다. (그때 찍어놓은 사진이 있는데 찾다 못찾았다. 계속 찾는 중.-.-) 아파트 단지 안에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 가을이면 단풍 곱게 드는 나무들. 어쩌면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에 눈을 뜬 게 아니라 자연을 느낄 나이에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해마다 여름이 지나가면 가을단풍에 기대를 걸어본다. 올해는 얼마나 예쁘려나.
빨갛고 노란 나뭇잎과 거리거리마다 수북히 쌓이는 낙엽들을 볼 기대에 부푼다. 어느 해는 유난히 곱고 어느 해는 유난히 밉기도 했다.
몇 년 전, 가야산의 만추를 보러 갔는데 갑자기 추워져서 단풍이 너무 미웠던 적이 있었다. 가야산 주변의 상인들이 장사가 안된다면서 미친단풍이라 하더라.ㅎㅎ 단풍이 고우면 당연히 아름답지만 특별하게 곱지 않은 올해같은 때에도 만추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산도, 들도, 도로변도, 아파트 마당까지.. 은행나무 가로수가 있는 도로는 갑자기 환해진다. 노랗게 노랗게 줄지어 있는 나무들 때문에. 고운 빛 옷을 입은 나무가 고운 빛 주단을 깔고 줄줄이 서있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에도 노란 불이, 빨간 불이 켜져서 환해진다.
올 가을 단풍은 곱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만추는 아름답다.
이처럼.
우리집 현관에서 찍은 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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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자락)
(당겨 찍음)
(전면에 보이는 수락산, 산 위에 그림자는 구룸 그림자겠지?)
(당겨 찍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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