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않게 친구덕에 일상을 탈출해서 바람을 쐬고 왔다.
강원도에 내린 4월의 눈을 볼 수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북쪽으로 향했다. 춘천고속도로를 달려서 눈이 있을까 하고 화천까지 갔다. 화천 평화의 댐. 특별히 갈 만한 곳이어서도, 보고 싶은 곳이어서도 아닌 그저 딱히 볼 것, 갈 곳이 없는 화천 땅이라 가 본 곳이었다. 자주 눈에 들어오는 작업나온 군인아이들이 안스러운 화천. 볼만한 눈구경은 못했지만 산 위에 남아있는 눈이동양화처럼 멋졌고 길 옆으로도 군데군데 눈이 남아 있었다.
평화의 댐에서 인증샷을 찍고 화천 시내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산천어 회에 반주를 하며 친구와 수다를 떨었다. 아는 거 많은 친구는 산천어에 대해 얘기한다. 산천어도 양식을 하는데 가두리양식을 하지 않고 흐르는 물에 한다고. 산천어가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라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렇다면 흐르는 물에 양식할 수밖에 없지. 고인 물은 금방 오염이 되니까. 전에는 자주 먹으러 다니던 메기를 언제부턴가 먹지 않는 이유는 메기가 더러운 물에서 잘 생존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깨끗한 물에 산다고 하니 생전 처음 먹는 음식이지만 거부감이 없다. 산천어는 연어처럼 산란기에 고향으로 회귀한다는 둥, 바닷물에 사는 게 송어고 민물에 사는 게 산천어라는 둥 아는거 많은 친구는 산천어 하나를 가지고도 한참을 이야기한다. 하하.. 회와 낮술로 한참을 수다 떨다가 나와서는 이디오피아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춘천 의암호 바로 옆에 있는 이디오피아 커피숍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으니 창으로 한가득 의암호가 들어오고 넘어가는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 since 1968. 꽤 오래된 커피숍에 친구는 추억이 많은 모양이다. 커피를 마시며 마주앉아 있는데 나는 현재에 있고 친구는 과거에 있는 느낌. 누구에게나 과거는 젊고 아름다워라.
영화를 보잔다.CGV에 도착하니 마침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
건축학개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해서 그려지는 첫사랑 이야기.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지만 고백하지 못하고 헤어졌던 안타깝고 아쉬운 첫사랑을 세월이 흐른 후에 만나는.. 해피앤딩도 슬픈이야기도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바로 며칠 전, 젊은 친구에게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번을 보고도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었다는 얘기. 젊은 친구들에게 이 영화는 비극일까. 그러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겠지. 나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마음이 조금 우울해졌다. 그건 내 젊은 친구의 느낌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많이 청춘을 지나쳐왔다는 것이 우울했다. 건축학개론의 결말은 내게 힘들지 않다. 인생은, 사랑은그런거라는 걸 벌써 전에 깨달았으니까. 다만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는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좀 우울했다.
춘천이니 막국수를 먹고 가잔다. 검색을 해서 찾아 간 곳에서 막국수를 시키고 촌떡이라는 걸 시켜봤다. 감자떡 쯤으로 예상했는데 얇게 메밀을 부쳐 그 속에 무채김치 같은 것을 넣어 돌돌말은 음식이었는데 맛은 이름처럼 촌스러워서 몇개 집어먹고 말았다. 그래도 막국수는 맛이 있어서 다 먹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다. 차 안에서도 바람이 느껴졌다. 내가 옆에서 힐끗거리며 속도계를 보는 것도 모르고 친구는 열심히 밟아 내집앞에 내려 놓고 갔다.
BMW와 현대 SUV
가끔 식사하러 근교로 나가게 되면잠을 잔다. 풍광을 보겠다고 결심해봐야 가는 길만 겨우 보게될 뿐 돌아오는 길은 영락없이 잠에 빠져드는데 이번 짧은 소풍은 가고 오는 길 내내 졸지도 않고 BMW로도 두 시간만 가면 피곤하고 불편해서 몸부림을 하는데 온종일 돌아다녔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부담없는 친구와 수다떨며다녀온 소풍이어서였을까? 끼끼 웃는 모습이 천진해 보이는 친구 덕에 예정에 없던 일상탈출, 바람 잘 쐬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