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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속초여행

 

세월호 참사 때문에 여행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전부터 우울하던 것이 그날 이후 더 심해져 약속도 잡지 않고 오로지 인터넷과 뉴스만 보면서 지냈다. 가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가 배낚시까지..

 

그래도 안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순전히 영균이 때문이었다. 영균이가 실제로 속초여행 때문에 마음을 썼는지 어쨌는지는 모르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꽤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운영진도 아니면서... 영균이 때문에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출발 전날 창근이의 기대에 찬 전화를 받고는 그래, 즐거운 마음으로 갔다오자! 맘을 먹었다.

 

초등동창과 속초여행은 세 번째. 낚시도 세 번째. 이번에 제일 큰 물고기를 낚았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가자미. 손바닥보다 훨씬 큰 걸 두 마리나 잡았다. 선장이 낚시대에 지렁이를 끼워서 건네주는 걸 바다에 던지고 추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줄을  푼다. 그리고 줄을 살살 당겼다 늦췄다 하면서 미끼를 무는 느낌이 들 때 줄을 당겨올리면 되는 낚시. 지난 두 번의 속초여행 때마다 나는 남보다 물고기를 많이 잡았는데도 그때 무슨 느낌이었는지 기억도 안나. 낚시대를 드리우고 줄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난감했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모르겠다. 뭔가 걸리는 것도 같고 무게가 무거워진 것도 같고. 그러나 살짝 들어보면 무게가 달라지지 않았다.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어느 순간 앗, 느낌이 왔다. 그랬다. 퍼덕이는 느낌. 반사적으로 줄을 당긴다. 역시 무게가 좀 다르고 매달려서 퍼덕이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줄을 당겨 올리는동안 확신이 든다. 역시!! 손바닥 보다 큰 가자미가 힘차게 퍼덕거리며 올라온다. 하하.. 아무것도 몰라도, 기억하지 못해도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물론 미끼를 살짝 떼먹고 도망치는 건 캐치가 어렵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 한참을 지루하게 낚시를 드리우고 살살 흔들리는 배에 무릎을 부딪히며 느낌을 기다린다. 이렇게 살짝씩 닿아도 무릎이 시퍼렇게 멍이 들거야. 창근이에게 말했다. 밤에 확인해보니 역시나 검붉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먼저 낚은 느낌을 잊을 만할 때 쯤에 또 오는 느낌. 소리도 지르지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낚시줄을 올리면 옆에서 창근이가 말한다. 또 잡았구나?! 올려보니 또 그만큼 큰 가자미. 노란가자미. 참가자미란다.

 

파도가 조금씩 더 높아진다. 키미테도 안붙였는데 별 문제는 없었고 배가 더 크게 흔들려도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바다를 보면서 진도 앞바다를 생각했다. 이 차가운 물 속에 배가 잠겨 있고 사람이 그 안에 있다니 기가 막혀...

 

출발했던 설악항으로 돌아와 선장이 세꼬시를 만들어 주었다. 낚시배 타기 전에 먹던 감성돔, 데친 문어와 가자미세꼬시, 그리고 술. 그리고 이른 저녁.

 

일찍 올 것 같던 민성이는 끝내 숙소에 들어갈 때까지 오지 않았다. 재판은 없다지만 정리할 일이 있다고 했는데 일이 쉽게 끝나지 않았나보다. 다음날 일정도 있다 했으니 너무 늦으면 오는 것도 부담이겠다 생각하는데 전화가 왔다. 오는 중이라고. 필요한 거 없냐고 묻기에 먹을 거 다 먹고 밤에 필요한 건 이미 사다놓았으니 필요한 거 없다고 그냥 라고 했는데 한참을 지나서 황태포 한 보따리를 사서 들고 왔다. 인원수를 묻더니만 그걸 사려고. 어떻게 황태포를 살 생각을 다 했을까? 나같으면 그런 아이디어를 못냈을텐데..

 

숙소에 들자마자 샤워하고 12시 전에는 어디서 뭘 하든 잠자리에 드는데 선희와 민성이가 가야 해서 그 친구들이 가고 난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늦어서이기도 하고 친구들이 들락거려서이기도 하고 잠을 깊이 자지는 못했다.

 

 

 

 

다음날 울산바위 등산을 했다. 낚시도 여섯이 하고 넷이 남아 술마셨는데 등산도 여섯명만 갔다. 덕분에 열 명, 열 두명이 함께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다. 단체 사진 찍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

 

울산바위에 오르며 주변 사람들 대화를 들어보니 전날 와서 술마시고 놀다가 잠 못자고 오르는 등산객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 우리도 그런 팀. 나는 평소보다는 술을 더 먹었겠지만 긴 시간 조금씩 먹어서 그런가 술 마신 느낌이 전혀 없었다. 다만 잠을 좀 못자서 눈이 무거운 게 부담.

 

흔들바위까지는 산책 수준이었으나 거기서부터 울산바위까지는 참... 힘들었다. 숨이 차고 나중에는 하품도 나오고. 창근이가 하품하는 건 좋지 않은 증세라면서 자꾸 물어보고 내 컨디션을 확인해줬다. 울산바위 바로 밑까지 올라가 쉬면서 포도를 먹었더니 훨씬 나아졌다. 당이 떨어져서였을까. 마저 올라가 울산바위에서 사진을 찍고 신경써서 조금 천천히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천천히 내려와야 한대서.

 

초입까지 내려와 산채비빔밥과 감자전, 김치전을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밥 조금을 김에 싸서 아침으로 먹은게 다여서 배가 많이 고팠는데 시간마저 늦었으니. 3시가 조금 넘어서 등산하지 않은 친구들과 만나 슬슬 서울로 출발. 가평휴게소에서 다시 만나 커피를 마시고 삼양동으로 다시 출발.

 

7시쯤 삼양동에서 삼양동 친구 세 명이 합류해서 저녁을 먹었다. 피곤한 친구들 먼저 보내고 삼양동 친구들과 같이 커피 한 잔 하고 남은 황태포 두 개는 여친들에게 주고 택시타고 집으로 왔다. 휴.. 긴 여행이었다.

 

출발 전부터 이번 여행은 창근이의 마니또가 되기로 작정을 했었다. '나의 새로운 남친'이라고 하면서 같이 다녔는데 오히려 창근이가 내 짐 들어주고 챙겨주고. 많은 이야기를 했으나 창근이는 아마 많은 부분 기억하지 못할 거 같다.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는데 다음날 얘기해보니 민성이 배웅해준 것도 기억 못하더라는.. -.-;;

 

가고싶지 않았으나 다녀오기를 잘 한 것 같다. 창근이의 마니또가 되어 준 것도 잘 했고. 스스로 기특해..

오지라퍼는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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