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빌 어거스트 감독 / 리암 니슨, 우마 서먼, 제프리 러쉬, 클레어 데인즈...
1998년 / 영국, 독일, 미국 / 134분
토요일 밤, EBS에서 레미제라블을 봤다. 꽤 늦은 시간에 시작해서 과연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1시가 훌쩍 넘어서 끝나는 영화를 졸지도 않고 끝까지!
얼마 전에 개봉한 걸 못봐서 아쉬웠는데 잘 됐다 싶어서 보기 시작했는데 오늘 검색해 보니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가 아니고 1998년 영화였다. 원작의 시대 탓인지, 당연히 얼마 전의 영화라고 생각해서였는지 오래된 영화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레미제라블, 장발장, 혹은 아아 무정으로 번역된 고전문학. 나는 장발장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읽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내게 선물로 사준 책. 아빠는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에 이 책을 사면서 앞으로 자주 책을 사주어야지 결심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빠의 월급날 이 책을 샀을지도.. 사면서 앞으로 월급을 받을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사주어야겠다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그 다짐은 아빠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꾼 교통사고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을 뿐이고...
읽을 책이 많지 않았던 그 때, 시간이 남아 돌아 지루하고, 하루가 일년 보다 더 길게 느껴지던 그 시절에 나는 읽은 책을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아마 장발장도 여러 번 읽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책의 내용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머리속에 그림처럼 장면 장면들이 새겨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 때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법한 부분, 가령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같은 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 얼마 전 레미제라블이 개봉될 때 시대적 배경이 프랑스 혁명 전후의 혼란한 상황이라는 걸 어디에선가 읽고 내가 어려서 책을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생각했다. 아빠는 왜 하필 아이들이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을 사주셨을까 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시대는 배경일 뿐이고 장발장이, 장발장을 끝까지 추적하는 자베르가 그리고 그 둘이 상징하는 무엇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다음날 김 훈 원작, 임권택 감독의 영화 화장을 보았다. 원작자, 감독, 주연... 기대를 갖고 본 영화였고 좋은 영화였으나 전날의 감동, 레미제라블에 힘을 잃는다. 고전은 옳다.
맘에 들었던 영화, 그래서 원작 책까지 찾아 읽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감독이 이 영화의 감독이었다. 영화를 적게 본 편인데도 불구하고 여운있는 영화의 감독이 알고보면 동일인인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선호하는 작가가 있고 친구도 코드가 맞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영화도 그런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