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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일기

엄마는

 

엄마는 잘 살고 있다.

아빠 아프던 45일 동안 아빠보다 먼저 엄마가 돌아갈 것 같았고, 아빠가 돌아가면 곧 엄마가 따라 돌아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였는데 아빠가 돌아가시자 오히려 엄마는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쪼글쪼글하던 얼굴에도 살이 오르고 우산을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힘겨웠던 다리에도 어느 정도 힘이 붙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빠가 돌아가서 엄마가 더 슬플까 내가 더 슬플까 곰곰 생각하다가 아빠가 돌아가서 내가 더 슬프다고 결론 내렸다. 부부는 남이다. 하고...

 

모든 브레인 역할은 아빠가 했었다. 중환자실에 누워서도 엄마에게 전화로 집안에 처리할 일들, 세금 고지서를 체크했고 엄마는 아빠가 체크해주는 대로 따라 하기만 했다.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모두 아빠에게 떠넘겼다. 가령, 내게 줄 물건들은 아빠에게 일러두어야만 내가 엄마집에 갔을 때 아빠가 알려줘서 가져올 수가 있었다. 그토록 총기 있는 분이 맑은 정신으로 꼼짝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엄마가 점점 더 수상해지고 있다. 거의 매일 전화해서 열쇠가 없어졌다, 주민등록증이 없어졌다, 통장이 없어졌다, 도장이 없어졌다, 카드가 없어졌다, 돈이 없어졌다...

 

아빠 돌아가시고 막내 수술하고 한숨 돌린 후 치매검사를 위해 성모병원에 갔었다. MRI, 뇌혈류검사, 유전자검사, 치매검사. 대기가 한 달도 더 걸린다. 19일, 21일 두번에 걸쳐 검사를 하면 28일에 결과를 들을 수 있다. 거액의 검사료가 들어가지만 한 번 확실하게 해야 한다. 경도일 때 약을 먹어야만 진행을 늦출 수가 있다. 우울증인지 경도 치매인지 모르겠다.

 

우울증이라고 하기에는 엄마가 너무나 활기차게 살고 있다. 아빠가 안계시니 친구들과 노느라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를 지경. 매일매일 나돌아다니고 집에서 밥도 안해드시다가 목발 짚어야 하는 막내가 와 있어 밥을 해줘야 하는 게 스트레스일 지경이니까.

 

제일 두려운 것이 치매다. 암도 힘들도 모든 병이 쉬운 것 없겠지만 치매는 본인도 주변도 모두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고 하니 더 두렵다.

 

90대 중반에 돌아간 외할머니가 인지장애, 경도의 치매를 의심할 조짐은 있었으나 건강하게 사시다가 고생없이 돌아가셨다는 거에 약간의 기대를 가져보지만 내가 판단하건대 아무것도 아닌 걸로 넘어갈 것 같지는 않다. 진단을 받더라도 약을 먹으면 진행은 되지 않겠지. 그러기를 바랄 밖에.

 

세상에는 고통도 많고 병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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