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FatPig
극단 한양레퍼토리 / 한양레퍼토리씨어터
★★★★☆ / 영숙
오랜만에 연극을 한 편 봤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 청이와 현우. 뚱뚱하지만 밝고 당당한 청이와 자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외모지상주의적 속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우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느끼고 함께 있는 시간이 행복해 친밀해지지만 직장동료 등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지 못해서 갈등이 생긴다.
가까운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상열의 집요한 공격과 세뇌, 그리고 주변 시선 때문에 약해지기도 했겠지만 연인사이를 이미 끝낸 회사 동료 진희와의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끊고 맺음이 분명치 않은 현우의 성격도 일조를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그 신념대로 살기에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 나약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에게 소개하고 싶어하는 청이와는 달리 현우는 남에게 청이를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아 청이는 그것을 섭섭해 하는데 결국 회사 피크닉 행사에 같이 가기로 한다. 그러나 막상 피크닉 장소에서 현우와 청이가 자리잡은 곳은 남들과 멀리 떨어진 곳. 현우의 동료와 나눈 인사도 주차장에서 잠깐일 뿐 남들에게 제대로 소개시켜 주지도 않고 함께 어울리지도 않은 채 멀찍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것때문에 그들은 거기에서 언쟁을 시작하고 결국은 현우가 시간을 갖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연극은 끝난다.
연극은 뭔가 긍정적인 결말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 허무를 선사한다. 그러니까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라는 교과서적이고 진부한 메시지를 남기지 않는다.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들려오는 관객들의 대화 내용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했다" 였다. 뭔가 구체적인 메시지를 기다렸는데 허무하다는 반응. 맞다. 그랬다.
연극은 관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다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얼마나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사는지, 얼마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을 도외시한 채 보이는 것만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고 난 후에 결말은 관객 각자가 짓게 될 것이다. 긍정적인 결말이든 부정적인 결말이든...
배우의 연기도 좋지만 인물도 월등히 좋은, 결국 이 연극도 관객의 시선을 극복하지 못한 연극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걸 극복하는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