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계실 때는 어렴풋한 구절이 성경의 어디에 나오는지 묻기 좋았다. 물으면 바로 답이 나왔으니. 가끔씩 머리에 떠오르는 구절이 있어 생뚱맞게 전화로 물어도 대답하셨다.
어제, 블로그 일기글을 동생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요 며칠새에 있었던 일, 생각하는 것들을 구구절절 말하기도 입아프고 시간걸려서. 카톡을 읽은 동생이 바로 전화를 했다. 면회, 같이 가자고. 하루 휴가 내겠다고.
아침일찍 만나 차로 출발했다. 전철로 가면 8시에 출발하면 될 것을 차로 이동하느라 6시 20분에 집에서 나왔다. 두어 시간 걸려서 도착해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도 시간이 남아 기다렸다. 같은 뜻을 가진 후배가 와서 셋이 면회를 했다. 후배 말로는 첫날은 굉장히 힘들어 했는데 조금 안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도 까치집, 수염도 꺼칠하게 난 모습을 보니 아직 제대로 안정되지 못한 듯했다. 힘들겠지만 별 수 없이 스스로 마음을 안정하고 편안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바깥 걱정은 말라고 하고 나왔다. 영어사전과 두꺼운 漢韓사전을 사달라고 한다.
막내를 두고 나오면서 동생에게 그랬다. 성경에, 친구는 좋은 때를 위해 있고 형제는 어려운 때를 위해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우리 형제가 평소에는 다정하지도 다감하지도 않고 서로 남처럼 지내왔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니 그래도 형제가 서로 힘이 되지 않겠느냐고. 모녀도 좋은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부양의 부담이 있고 형제야말로 같은 문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정말 좋은 친구가 되지 않겠느냐고. 이제 곧 은퇴하고 늙었을 때 우리 형제들이 친구처럼 지내게 되지 않겠느냐고. 동생도 맞는 말이라고 했다. 그렇다.
비슷한 문화가 아니라 똑같은 문화, 시대, 환경에 서로 뻔히 아는 성격. 그래서 나는 2년을 썩을지라도 자존심을 굽히라고 말하지 못했고 그건 우리 가족이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막내를 정말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성격이 비슷한 우리 형제들, 그 성격을 물려준 우리 아빠와 아빠의 형제들일 것이다.
지금은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지만,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면 그때 우리는 다같이 늙어 있겠지. 늙어 자주 만나 정을 나누며 살 수 있겠지. 그 날이 오겠지.
돌아와서 내내 성경의 어느 부분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잠언쪽이 아닐까 싶었는데 찾아냈다. 잠언17장 17절에.
쉬운말성경 : 변함없이 언제나 사랑하는 것이 친구이고, 위급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이 형제다.
개역개정 :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막내 말로는 엄마가 느낌으로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엄마와 자식간에 끊어지지 않은 탯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탯줄이 자식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어두움과 불안을 야기할지도 몰라.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표정이 어둡고 약해졌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