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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스캐너 구입

며칠 전, 달라스에 있는 정순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주권 신청을 하려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데 내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미국 영주권을 어떻게 취득하는지 난 전혀 모르지만 모 방송국에 근무하던 남편의 경력이 도움이 되는 모양인지 그때 제작한 프로그램의 서류와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고 한다. 양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스캔을 해서 메일로 보내주면 선별을 하겠다고 한다. 방송국 서류니까 개인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닐테고 정순이네가 고민하고 생각해낸 방법이니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될 것 같다.

스캔을 외부에서 해오는 방법도 있긴 한데 서류의 양이 많은데다가 분실되지 않고 잘 돌아올지에 대한 확신도 없고 비용도 문제가 되어서 그냥 스캔을 하나 사서 내가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를 위해서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돕겠지만 그것이 내게 부담이 된다면 서로를 위해 좋은 건 아닐 것이다. 비용이 많이 발생할 경우 내가 친구에게 돈을 받을 것이 아니므로 내게도 부담이 될 것이고 도움받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것이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한가한 편이라 스캐너만 하나 구입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화급한 일이 아니라면 외부에 보내지 않고 스캐너를 구입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을 하고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사무실을 뒤져보면 쓰던 스캐너 하나가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몇년 전 컴퓨터를 구입할 때같이 구입해서 가끔 사용했었는데 컴퓨터를 바꾸면서 뭔가 맞지 않았는지 상태가 나빴는지 퇴출되었다. 내 작업이 사진을 스캔받아 쓰는 일이 많지만 퀄리티 때문에 평판 스캐너를 사용하지 않고 전문 업체에 맡겨 드럼스캔을 받기 때문에 다시 스캐너를 구입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보급형 스캐너를 하나 사면 친구 일도 도와주고 가끔씩 스캐너 아쉬울 때가 있었으니 두고 쓰면 되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순이 남편에게 내가 스캐너를 사서 직접 스캔을 받겠다고 했더니 자꾸만 죄송하다고 한다. 이건 죄송한 일이 아닌데... 어느 정도 자기에게 비용을 부담시켜야 일을 부탁할 수 있겠다고 자꾸만 이야기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아마 정순이 남편이 나를 도와주려고 더 애쓸 사람인데... 어쨌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도와주겠다고 했으니 제대로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통화끝에 정순이가 하는 말, "아무리 애를 쓰고 준비를 해도 이 일에는 기도가 필요해. 우리를 위해 기도해줘."

전화를 끊고 옛날 생각이 났다. 정순이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무신론자였고 매주일마다 교회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나와 교회다니는 친구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너도 십일조 하니?" 하고 물으며 은근히 비웃기까지 했는데... 지금은 무늬만 신자인 나와는 달리, 두 부부가 지행일치 · 신행일치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진실한 신자가 되었다.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하던 남편과 같이 시작한 신앙생활로 정순이의 가정이 많이 달라졌고 인생의 길이 바뀌었다. 남편이 술을 끊고보니 시간이 남아 돌아서 심심풀이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고 그것이 결국은 미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었으니까.

연희가 미국 얼바인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얘기를 정순이에게서 들었다. 박선배가 얼바인에 있으니 한 번 알아봐 달라고 할까. 얼바인이라는 도시는 얼마나 큰 도시일까. 박선배한테 부탁하면 찾을 수 있을까. 연희도 찾고 정순이가 일이 잘 풀리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얼바인에 가서 연희를 만나고 달라스에서 정순이를 만나고 워싱턴에서 은미를 만날 수 있다면... 다들 비행기값만 마련해서 오라고 성화를 해대는데 꿈이라도 꿔 볼란다. 나도 곧 미국 일주를 하겠구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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