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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귀신이 곡을...

이사를 하면서 정말 이해안되는 일이 하나 생겼는데 야마하 키보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되는 일.

별이가 초등학교 때 음악 이론을 내가 직접 가르친 적이 있었다. 서점에서 4권짜리 시리즈로 된 책을 사다가 차근차근 가르쳤는데 그때 아무래도 악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 솔직히 내가 갖고 싶기도 했고 - 보급용 야마하 키보드를 낙원상가에 가서 샀다. 아래 사진처럼 X자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키보드를 올려 놓아야 하고 아답터 전원을 연결해야 하고 보면대도 조립을 해야 하는, 분해해서 케이스에 넣으면 가지고 이동하기 쉬운 키보드였다. 물론 케이스가 있었고 그 케이스 안에 X자 받침대를 제외한 키보드와 주변기기를 다 넣을 수 있었다.


별이 음악이론을 가르칠 때 사용했고 그 후에도 내가 노래연습을 할 때나 가끔 마음내킬 때 사용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2009년 11월 초등 동창모임에서 라온음악회를 하기 전인 것 같다. 그때 크로마하프를 연습하면서 조율했을 것이고 음악회 하루 이틀 전엔가 최종적으로 조율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키보드도 거실바닥에, 하프도 거실바닥에 놓고 엎드려 조율하느라 한참을 씨름했으니까. 그렇게 조율을 끝내고는 당연히 케이스에 넣어서 한쪽 구석에 세워 두었을 것인데.

실제로 오랫동안 거실 장식장 옆 구석에는 키보드 케이스가 옆으로 세워져 있었고 크로마하프는 안방 장롱 옆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그 후로는 더이상 악기를 꺼내서 사용하지 않았고 이사하기 며칠 전에야 장식장에 들어 있는 책들을 정리하면서 키보드 케이스를 어쩌다가 만지게 되었는데 속이 빈 것 같은 거라. 이상한 느낌이 슬쩍 들긴 했지만 안방 하프 옆에 같이 세워두었나? 하고 무심코 넘겼는데 막상 이사를 하고 짐을 다 정리하고 보니 키보드가 사라졌다. 내가 얼핏 생각했던 안방 장롱 옆, 하프를 둔 공간에는 키보드가 없었고(나중에 보니 그만한 공간도 되지 않았고) 케이스만 장식장 옆에 세워둔 채 알맹이와 주변기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렇다. 사실 케이스만 장식장 옆에 두고 알맹이는 장롱 옆에 둘 이유도 없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케이스에 넣지 않으면 이것저것 주변기기가 있어서 반듯하게 정리가 될 것도 아니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라온음악회 때 조율하고 더이상 쓰지도 않았고 누구를 빌려주지도 않았고 별이나 별이아빠는 음악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쓸 턱도 없는데 키보드는 사라졌다. 그것도 케이스는 남겨둔 채로. 보관할 때도, 누가 가져가려고 해도, 누굴 빌려준다고 해도, 심지어 누가 와서 훔쳐간다 하더라도 케이스에 담겨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래서 사라지더라도 통째로 사라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케이스 없이 이동을 하려면 키보드 따로, X자 받침대 따로, 아답터와 보면대 따로라 들고 가기도 어려운 일인데 어째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귀신이 곡한다는 건 이런 때 쓰는 말인가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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