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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속 깊은 사람, 연필..

며칠 전, 커뮤니티(이장네)에서 몇 년 만에 송년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 커뮤니티는 송년회 때마다 선물교환이라는 것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물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액면가를 정해줬다. '만원에서 만오천원 정도 선' 이런 식으로. 그런데 이번 송년회 때는 따로 액면가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서 그런지 선물의 수준이 높아졌다. 나야 뭐, 오랜 멤버라 늘 그래왔듯 그 비슷한 수준에서 보온보냉병을 준비했는데. -.-

방법은 선물마다에 포스트잇으로 번호를 붙여 놓고 똑같은 번호를 접어서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다. 뽑은 제비를 들고 앉아 있다가 진행측이 선물을 들고 선물에 매겨진 번호를 부르면 그 번호랑 같은 제비를 뽑은 사람이 가서 받아 풀어보는 것. 고가의 상품이라면 이십여 만원쯤 가는 바바라 시계와 바바라 구두교환권이었고 목욕용품, 액세서리, 스웨터, 사과 1상자, 그외에 제일 많은 것이 와인이었다.

나는 5번을 들고 있었는데 5번 하고 부르기에 돌아보니 내가 내놓은 선물. -.- 이었다. 헐... 몇 년 전에도 내가 내놓은 선물을 내가 뽑은 적이 있었구만. 뽑은 선물을 서로 필요한 사람끼리 교환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나만 이장이 뽑은 사과 1상자와 교환했다. 이래서 나는 참석도 하지 않은 연필..이 기부한 사과 한 상자를 받기로 했는데.. 그거 참, 받기가 편치 않은 거라. 선물이 그 자리에 있어서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주소를 알려주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그거 받겠다고 주소 알려주기가 영.. 폐암 투병 중이던 연필..과는 지난 6월에 만나기로 했다가 못만난 터라 연락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락없이 지내다가.. 그래서 연필의 보내주겠다는 한줄메모에 잘먹겠다는 겉치레 댓글만 달고 말았는데 허걱.. 그 밑에 맛있는 것으로 보내라고 주문했다는 글이 또 올라오는거라. 주소도 모를텐데!!

내주소를 알 리가 없을텐데, 그리고 혹시 어떻게 알아본다 해도 상계동 주소일텐데 싶어 얼른 연필..에게 전화를 했더니 내가 언젠가 홍삼액을 택배로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홍삼 파는 친구에게 알아봤다는 것이다. 이런.. 언니가 보나마나 쉽게 주소를 알려 줄 것 같지 않아서 그랬다면서.. 통화를 마치고 얼른 세입자에게 전화해서 내게 올 택배가 있음을 설명하고 돌려보내지 말고 잘 받아달라 부탁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무엇보다 받은걸로 치고 넘어가려 하는 내 속마음까지 미리 읽고 얕은 꾀까지 내어서 보내준 연필..의 속깊음을 또 한번 느꼈다.

목요일 송년회하고 금요일 주문을 해서 토요일 내가 살았던 아파트로 도착한 맛있기로 유명한 풍기사과~!

   

 

게으른 내가 내 손으로 챙겨먹는 과일은 사과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과 이틀만 안먹으면 금단현상을 보이는 내게 보내준 맛있는 사과, 누구랑도 나눠먹지 말고 혼자 다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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