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임 때마다 찍어대던 사진을 친구들이 한 두해 전부터 부담스러워하더니 어느새 나도 부담스러워졌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과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이 확실하게 달라진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나 거울이 내게 얘기해주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사진은 보여준다. 왜 그럴까.
2.
한 때는 내 직업과 내 상황이 참 맘에 들었다. 혼자서 조용히 앉아 내 할 일만 잘 하면 되는... 여럿이 한 공간에 있으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감정의 긴장도 없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마음 맞지 않을 경우 생기게 되는 스트레스도 없고 일해야 할 때는 일하고 별일 없을 때는 내맘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좋았다. 한가할 때는 훌쩍 친구를 만나러 나갈 수도 있고 그게 귀찮으면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인터넷 서핑에 푹 빠지거나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낭비해도 누구 하나 간섭하지 않는 이 상황이...
3.
살아오면서 늘 들어왔던 나이보다 젊어보인다는 얘기, 동안이라는 얘기를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요즘 거울을 보면서 특히 사진을 보면서 이제는 그 환상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아, 어느새 내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묵직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런거지, 사는 게 그런거지, 뭐 어쩌겠어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어디를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하며 내 하루하루를 돌아본다.
4.
거울 속 내 얼굴은 돌아가신할머니를 닮아가는 것 같다. 교양있고 근엄해 보이는, 웃음기 없는 얼굴의 우리 할머니. 그 할머니의 얼굴 중 교양과 근엄은 빼고 웃음기 없는 처진 볼만 닮아가는 것 같다. -.- 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 어린아이들의 특성인 웃고 깔깔거리는 것을 시시덕거린다며 야단치셨다. 수다스러운 것도 질색하셨고 유머러스한 할머니의 셋째아들을 싱거운 놈이라며 비난하셨다. 그 피가 그대로 전해져서 그런지 우리 집은 늘 조용하고 심각한 분위기였다. 지금 거울속에 비치는 내 얼굴에는 할머니의 그 무표정한 모습이 보인다.
5.
1997년부터 나는 혼자였다. 그 전에는 직장생활도 했고 또 내가 오너가 된 후에도 직원이 서너 명은 늘 있었으니까. 상황이 달라져서 1997년 P님과 함께 있기로 한 후부터 하루종일 혼자 있다시피 한 것이다. P님은 외근으로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도 생각이 맞지 않아 필요한 말 외에는 대화가 없다. 그러니 혼자 일하고 커피도 혼자 마시고.. 사람소리 듣는다는 것이 업무상 통화 뿐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술의 발달이 업무상 사람을 만나는 것마저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집에 가면 대화할 시어머니도 계시고 잔소리해야 하는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새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잔소리할 어린 아들은 잔소리 듣지 않을 만큼 커버리더니 급기야 집을 떠나 군대로 가버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몇년 전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시끌벅적한 커뮤니티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6.
지금 나는 혼자다. 하루종일 혼자 있고 퇴근해도 혼자. 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만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기는 하다. 그는 나랑 별반 차이 없어서 마치 내 그림자같은, 아니면 내가 그의 그림자같은 그런 존재이다. 내 그림자 같은 그 존재는 나와는 달리 출근을 하면 사람을 만나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다. 그래서 그는 집에 돌아와 조용히 쉬는 것이 편안한 사람이기도 한데다가 우리 할머니의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조용한 사람이다.
하루종일 혼자 지내다가 퇴근 무렵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며 신나게 웃기도 하지만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조용히 집에 돌아와 말없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잠든다. 평일을 그렇게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주말에도 혼자서 산에 가거나 하염없이 길을 걷거나, 가끔은 내 그림자 같은 사람과 산에 간다.
7.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웃어서 생기는 주름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늘 웃는 사람은 늙는 것도 더디다. 내가 요즘 갑자기 늙어가는 것을 느끼고 내 하루를 돌이켜보니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는 하루 하루라 말할 일도없고 웃는 일은 더더구나 없다. 무표정하게 혼자 앉아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온갖 염려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나와 내 가족으로 인한 염려도 있지만 특별히 큰 걱정거리가 없다보니 내 주변 사람들의 일과 뉴스에서 들려오는 모든 일들까지도 내 염려가 되고 스트레스가 된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받는 스트레스보다 혼자 있으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당연히 내 표정은 밝을 수가 없고 얼굴은 무표정하게 굳어가고 늙어간다.
8.
예전에 맘에 들었던 내 직업과 내 상황이 지금은 나를 늙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그랬다.너무 외로워서 초저녁에 펑펑 울어본 날이 있었다고. 아이들은 커서 밤 늦게 돌아오고 일찍이 사별해서 혼자인 친구, 하루종일 집에 혼자 있다가 초저녁부터 아이들 오는 시간만 기다린다는 그 친구.. 그 말을 듣고 뭐라 위로할 말도 없고 정말로 안타까웠는데지금 나는 그 친구의 상황이 이해가 간다. 그 친구가 이 말을 들으면 기막혀 하겠지만...
9.
오늘 날씨가 참 을씨년스러웠다. 딱히 추운 것도 아니면서 스산한 것이 뭔가 올 것만 같은... 오늘의 넋두리는 그래서 날씨탓이 클지도 모른다.
10.
내일부터는 혼자 있을 때,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연필을 물고 있어야겠다. 혼자 웃고 있을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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