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만 18년 전, 1990년 11월 26일 오후 3시. 그 날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 날 그 순간이 내 인생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
2박3일의 진통을 겪고도 끝내 정상분만하지 못하고 응급수술로 아기를 낳았다. 전전날인 토요일, 월간지 마지막 교정을 끝내 인쇄를 넘기고 쌍문동에 있는 한일병원으로 퇴근과 동시 입원했다. (이 대목에서 내가 독종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일요일 아침 7시부터 하루종일, 월요일 아침 6시부터 수술실에 들어갈 때까지, 분만실에 있었던 그 긴 시간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산모들은 분만실을 들어오고 진통을 겪고 아기를 낳아 밖으로 나가는데 나는 이틀동안 남들 아기 낳고 나가는 모습만 누워서, 고통 중에 바라보고 있었다. 분만실에는 의사와 간호사, 산모들이 북적거렸지만 나는 외딴 섬에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어찌나 외롭고 슬프던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니 오가는 간호사들이 위로해주기도 하고..
관찰 중이던 태아의 상태가 나빠져서 응급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보호자 사인을 받아야 하는 그 때, 남편은 일 때문에 사무실에 나가 잠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엄마의 사인으로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생전 처음 들어간 수술실에서 겁먹고 누워있는데 수술준비를 하면서 간호사와 의사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웃기도 했다. 평소에 생각했던 수술실 풍경과는 좀 달랐지만 화기애애해 보이는 그 분위기가 내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줬을 것이다.
그렇게 할 고생 다하고 수술하는 최악의 수순으로 아기를 낳고 산부인과 병실이 없어서 내과 2인실로 들어갔는데 거기는 복막염으로 입원해서 고생 대충 끝나고 회복중인(음식을 먹기 시작한) 대학생 처녀가 있었다.
나는 건강한 체질이었다. 엄마는 아주 어려서 녹용을 먹인 효과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홍역하느라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간 것과 치과에 간 것 빼고 병원에 간 건 산부인과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회복이 늦었고 수술 후 회복 중에도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옆에 처녀아이가 결혼과 출산에 겁을 잔뜩 집어먹게 만들고 퇴원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이틀정도 늦었지만 그럭저럭 잘 회복했다.
87년 5월에 결혼하고 90년 11월에 아기를 낳았으니까 (나름대로 스케줄 베이비^^) 아기를 기다렸고 육아서적도 여러 권 읽어서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는 했는데 실제는 달랐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두려웠다. 아기를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은 알았지만 막상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무엇보다 가사와 육아, 직업까지 함께 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 생전 처음으로 죽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몸살을 앓았다.
결혼 전에는 물도 갖다주는 거 먹었다는 남편은 그때부터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 나눴다. 다행히 아기는 온순했고 총명하게 탈없이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게 커갔다. 엄마도, 시어머니도, 주변 사람들도 이런 아이는 열도 키운다고 더 낳으라는 소리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지금까지 아이는 건강하게 탈없이 착하게 잘 자랐다. 사춘기 때는 너무 착하게 자라는 아이의 마음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힘든 건 아닐까 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사람은 자라게 마련이지만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어도 아이를 키우는 건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아주 많이 자랐다. 아이 하나를 키우면서 사람이 이렇게 자라는데 아이 둘, 셋을 키우면 어떨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는 아이 둘을 키운 엄마는 모두 내게 스승이고 아이 셋, 그 이상을 키운 엄마는 무조건 존경한다. 그 엄마들은 아마도 모두 해탈의 경지에 이른 成人일 거다.
생명을 키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이 물고기나 강아지를 키우는 일일지라도..
아이를 낳아 키워보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40여 년을 매 주마다 만나는 친구와도 선 후배와도 인사도 안하고 지내는 싸가지 없는 잉간으로 살아갈 것이고 좋은 것을 보아도 표현은커녕 감탄조차 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나 아픔도 공감하지 못하는 냉혈한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는 나를 자라게 해 주었고 지금은 까르르 넘어가는 기쁨을 주지 않지만 이미 어린 시절에 내 인생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기쁨을 주고도 남았다.
지금까지 잘 자라준 것처럼 앞으로도 잘 자라줄 것이라고 믿고 또 이렇게 잘 자라도록 도와준 주변의 모든 도움과 보이지 않는 힘에 감사드린다.
방금 아들 넘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은 뭐랑 먹느냐고..-.- 생일이지만 미역국도 끓여주지 않았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갑자기 바빠지는 바람에 아들 넘 먹거리에 신경도 못쓰고 아침에 케익만 잘랐는데..
에구.. 속으로 고맙다 생각만 말고 먹을 것 좀 해 놓고 다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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