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토요일, 외사촌 동생이 늦둥이인 셋째의 돌잔치를 한다 해서 부평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외숙모를 뵈었는데 요즘 집을 허물고 새로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가는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에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를 했고
한 두번 고치기는 했지만 원형은 변하지 않은 채로 여태까지 있었는데
이번에 싹 헐고 아예 새로 집을 짓는 중이라고 한다.
어릴 적에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엄마를 졸라서 놀러갔던 외가,
그곳에서 나는 고향의 정서를 알았고 농경생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외가에 갈 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었다.
호롱불도 그곳에서 보았고 호롱불에 일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한 방에 둘러앉아두런두런 나누는낮은 목소리가 얼마나 정겨운지 그때 알았다.
명절이면 두부를 만들고 엿을 고와서 한과를 만들었다.
갓을 쓰고 한 밤중에 친척들이 모두 모여 제사를 지냈다.
외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집성촌이라 친척끼리 모여살아서
방학에 가면 동네 모든 어른들이 반겨주었고 나를애기씨라고 불렀다.
여름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옆에 모깃불을 피우고 누워서 별을 보았다.
썰매를 타는 것도, 작은 동산을 굴러서 내려오는 것도 그곳에서 해봤고
조금 커서는 일이 하고 싶어서 고추모도 심어보고 콩타작도 해봤다.
반나절도 못하고는 죽는 줄 알았고 그 후로 농사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을 하게 되었다.
내 고향같은 그 시골 외가가 이제는 완전히 도시의 아파트와 다름없이 바뀌게 되었다.
부엌의 가마솥도, 불 때는 아궁이도, 연기나는 굴뚝도 이미 오래전에 집을 고치면서 사라졌고
그보다 더 먼저 들판의 아이들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나는 외가를 생각하면 어릴 때 뛰어놀던 그 외가를 떠올리는데...
그 추억이 깃들어 있는 외가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다.
2.
일요일에는 시내에 나왔다가 약속시간이 남아서 남산골 한옥마을에 들렀다.
전날 외가 소식을 듣고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한옥마을에서 전통문화체험 이벤트가 진행중이었다.
굴렁쇠를 굴리고 제기를 차고 널을 뛰고 그네를 뛰고...
한쪽에는 짚으로 만든 수공품이 전시되어 있고 원하는 사람은 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아래 달걀꾸러미는 우리 어린 시절, 미아리에도 있었던 것이라대부분 알 것이고
가운데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이것을 외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
어느 책 광고글에서 봤던가.
나이를 먹으면 자연이 보인다고.
몇년 전부터 내 눈에 나무며 풀이며 꽃이 보이는 것도
지나간 날들이 시리게 아쉬운 것도
내가 나이먹은 증거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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