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연극 이기동체육관을 관람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들려오는 그 옛날 스포츠 중계방송의 시그널과 화면에 이어지는 과거 복서들의 이미지는 특별히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까지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왕년의 권투선수, 한 때챔피언이 될 뻔했던 늙은 이기동선수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그의 전성기에 꼬마팬이었다는 동명의 이기동이라는 시간강사가 권투를 배우고 싶다며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체육관은 이름도 삼양체육관이다. 하하.. 내 어린시절 늘 지나치던 장소에 있었음직한 삼양체육관.
챔피언을 눈앞에 두고도 좌절했고 그 꿈을 아들을 통해 실현해보고자 애썼으나 아들이 죽자 패배감과 죄책감으로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망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이기동 관장, 삼류 복서로 선수 생활을 끝냈지만 그래도 챔피언은 키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사는 코치 마인하,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하는 듯한 전혀 화려하지 못한 수다쟁이 싱글녀 정애숙, 보험설계사 관원 서봉수, 건담을 좋아하는 양복쟁이 강근담, 늘 입에 욕을 달고 동급생에게 맞은 복수를 하기 위해 권투를 배우겠다고 졸라대는 문제여고생 탁지선,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권투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권투를 하는 관장의 딸 연희, 그 체육관을 드나드는 이들은 대부분 승리하지 못하고 일등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 채 그저그렇게 하루하루살아가는 사람들이었지만 끝내 모두 희망을 찾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 계기가 이들을 희망으로 이끌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김수로가 맡은 청년 이기동의 출현 이후이기는 한데 그가 이들에게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는지 아니면 뭐 사는 게 다 그렇듯이 어려운 상황에도 한가닥 희망이 있어 그 희망이 작은 꽃을 피워낸 건지...
문제여고생 탁지선은 운동은 예절이라고 가르치는 코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여 배운 덕에 예의도 바르게 변하고 청소년 권투대회에 나갈 꿈을 꾸게 되고 코치는 그런 지선을 체대에 특기진학시키려는 꿈을 갖는다.
아버지와 화해한 연희는 시합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여 시합장으로 가고 늘 부장님에게 주눅들어 있던 보험설계사도 용기를 얻고 건담과 싱글녀가 잡은 손에는 사랑의 하트가...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희망, 한줄기 희망만으로 사람들은 생기를 얻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가부다. 실감나는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땀흘렸을 배우들의 노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는 공연이었다. 권투 연습하는 장면, 줄넘기하는 장면, 연희의 푸쉬업하는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큰 감동, 큰 웃음, 큰 깨달음을 던져준 공연은 분명 아니었지만 이 공연의 스토리처럼 잔잔한 감동과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작은 웃음,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공연이었다.
또 나는 이 공연을 보면서 별이아빠가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쩍 슬쩍 눈물을 찍어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별이아빠와 경험한 것이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내가 보지 못하는 무엇을 별이아빠는 이 공연을 통해 보는 것 같았다. 많은 부분 이해하지만 또 많은 부분 서로 이해 못하는, 많은 부분 같지만 또 많은 부분 너무나 다른, 그래서 따로 또 같이..
'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동네 (0) | 2011.02.07 |
---|---|
장석조네 사람들 (0) | 2011.02.05 |
뮤지컬 화랑 (0) | 2011.01.20 |
신년음악회 (2011.1.11) (0) | 2011.01.13 |
사랑하고 싶은 시간 (0) | 2010.12.04 |